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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백비와 무명천 할머니 / 김영희

등록 2017-04-04 17:24수정 2017-04-04 19:06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 있는 기념관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비석이 누워 있다. 이른바 백비다.

7년여에 걸쳐 2만5천~3만명이 죽임당했던 국가폭력을, 제주도민들은 수십년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2000년 이후 특별법 제정과 국가추념일 지정 등이 이뤄졌지만 이름 없는 백비는 끝나지 않은 아픔의 상징이다. 한때 사태, 폭동이라고도 불렸던 4·3을 항쟁, 봉기, 아니면 그 무어라 부를지 우리는 아직 제대로 정명하지 못했다.

기념관에는 ‘무명천 할머니’의 사진이 있다. 토벌대 총탄에 아래턱을 잃은 진아영 할머니는 평생 하얀 천으로 감싼 채 죽기보다 힘든 고통 속에 살았다. 사람들이 흉하게 여길까, 할머니는 뒤돌아 천을 풀고 겨우 죽을 떠넘기곤 했다. 지금은 한림읍 월령리에 ‘무명천 할머니 삶터’가 보존돼 올레길 순례객도 찾고 있지만, 200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할머니를 돌본 건 국가가 아니라 언니와 조카였다. 국가배상은 언감생심, 도 조례로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생활보조비가 일부 지원된 게 2011년이다.

4·3은 역사에서 좀 더 일찍 등장할 기회가 있었다. 1960년 4·19 혁명 뒤 제주대 학생 7명이 ‘4·3사건 진상규명동지회’를 만들어 진상조사 작업에 나섰고, 단 하루지만 국회는 희생자들의 증언을 청취했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 다음날 동지회 소속 두명이 끌려가고, 피해자 접수에 앞장섰던 제주신보 임원도 구속됐다. 경찰은 위령비를 부수고 땅에 파묻었다. 반공법과 연좌제가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 20년간, 4·3은 금기어였다. 70주년을 한 해 앞둔 지금도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보상 문제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데는 그 지체된 세월 탓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으로 박정희-박근혜 시대가 매듭지어져 간다. 이제 누워 있는 백비를 일으켜 역사적 평가를 새겨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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