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최저임금 1만원엔 죄가 없다 / 박정훈

등록 2017-04-09 18:26수정 2017-04-09 19:10

박정훈
알바노동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3.2평짜리 집이 화제다. 전 주인은 죄지은 미군이었다. 감옥에서만큼은 미국 병사와 우리나라 군 통수권자가 같은 급인 셈이다. 감옥이 그 나라 인권의 척도라는데, 정부가 보기엔 미군의 인권이 3.2평, 한국인의 인권이 1.9평인가 보다. 한국인이 수감된 감옥 독방 대부분은 1.9평. 그렇다면 미군과 박근혜가 지내는 방을 1.9평으로 줄이면 될까? 다른 방법도 있다. 모든 재소자에게 3.2평의 방을 제공한다면 미군이고, 대통령이고 다 떠나서 사람이기 때문에 보장받는 인권이 된다. 범죄자에게 쓸 돈이 어디 있냐 항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3.2평이 특권이라 여겨지는 이상한 사회, 선택된 소수만이 자원을 독점하는 계급사회가 계속될 것이다.

이와 똑같은 논리가 최저임금 1만원에도 적용된다. 알바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만원을 주장하면 알바 주제에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저렴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먹고 살면 되지, 왜 이렇게 욕심이 많냐 다그친다. 심지어 최저임금 1만원에 죄를 묻기도 한다. 영세자영업자를 무너뜨리고, 고용을 없앨 것이며 물가를 상승시킬 주범이라는 혐의다. 최저임금이 고작 450원 오르고, 최저임금위원회가 산정한 생계비 152만원에도 못 미치는 126만원의 임금을 받는 지금, 영세자영업자들은 행복하고, 일자리가 넘쳐나며, 물가는 낮은가? 547만 자영업자 중 직원이 있는 사장님은 157만명뿐이라는 사실, 서민들은 쓸 돈이 없어 비싼 물가조차 느낄 수 없는 현실은 무시된다.

우리가 고작 3000원 가지고 싸우는 동안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2015년 연봉으로 149억5400만원을 받았다. 시급 596만원. 최저임금 1만원 일자리 596개가 사라졌다. 이건희는 지난해 배당금 1899억원을 받았다. 월 158억원. 월 158만원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 1만개가 사라졌다. 편의점 매출은 20조를 기록했지만, 사장님들은 월 200도 힘든 불공정한 산업구조, 건물주가 가져가는 수백에서 수천만원의 임대료에는 왜 죄를 묻지 않을까? 혹자는 최저임금 인상 말고 준수부터 요구하라 훈계한다. 두 개의 요구가 충돌된다 생각하는 것도 재밌지만, 알바는 최저임금 받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나? 우리의 욕망을 법에 가둘 이유는 없다.

감옥을 보고, 우리 집 고시원보다 낫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나도 병역거부로 수감돼 감옥 문을 열었을 때, 처음으로 월세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삼시 세끼 걱정 없고, 매일 30분 이상 운동하며, 주말엔 영화 보고, 식사 후엔 커피와 바둑을 즐기고, 자기 전에 누워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다. 물론 자유가 없어 일분일초도 있고 싶지 않았지만, 감옥 밖에선 생계 걱정 없이 살 자유가 없긴 마찬가지다. 노숙자와 절도범 등 생계형 범죄자들이 출소를 두려워하는 이유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감옥보다 못한 삶을 견뎌야 하나?

안철수가 ‘(최저임금이) 2022년쯤에 1만원에 도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에 징역 5년을 선고한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마자 사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다. ‘나중에’ 또는 기다리라고 하는 대선후보가 안철수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사면이라도 해서 꺼내야 할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 국민의 인간다운 삶이다. 최저임금 1만원엔 죄가 없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우리의 욕망도 무죄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60cm 면도날 철조망’ 세운 경호처…윤석열 오늘은 체포될까 1.

‘60cm 면도날 철조망’ 세운 경호처…윤석열 오늘은 체포될까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2.

윤석열 내란의 세계사적 맥락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3.

[사설] 체포영장 거부하면서 구속영장 응한다는 윤의 궤변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4.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5.

배울만큼 배웠을 그들, 어쩌다 ‘윤석열 수호대’가 되었나 [1월7일 뉴스뷰리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