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고령화가 극소수 선진국에 한정된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령자 중 3분의 2가 소득 중하위권 국가에 거주할 만큼 노인문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팻 테인의 말마따나 “늙는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유엔은 노인 인권을 위한 향후 과제 중 하나로 노인들 스스로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꼽는다. 이는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동적 접근에서 권리에 기반한 적극적 접근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보는 고령친화도시와도 통하는 것이다.
얼마 전 경북 영덕에서 경운기 사고로 농부가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60대 노인이었다. 경북 구미에서도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뜬 농부 소식이 들렸다. 70대 노인이었다. 경북도 소방본부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농기계와 관련해 도내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총 16명인데 그중 60대가 5명, 70대가 8명이었다. 전국을 합하면 경운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고령의 농부들이 얼마나 많을까.
소준철의 연구에 따르면 도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의 삶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에 일을 시작한다. 새벽 1시에서 4시 사이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심야 시간은 가장 위험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때 길거리를 헤매는 것은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이 발생할 것인가.
초고속으로 노인층이 늘어나는데도 노인을 위한 대책이 너무나 부족한 나라가 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자살률, 교통사고 사망률이 최악인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삶의 만족도 역시 꼴찌 수준이다. “의지할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지지 또한 최하위권이다. 한국 노인들 다수가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이중의 늪에 빠져 있는 현실이다.
이번 대선의 유권자 네 사람 중 한 명이 60살 이상이다. 후보들이 내놓은 다양한 노인복지 정책은 주로 기초연금을 올리고 노인의료를 확충하는 게 요점이다. 장기요양보험, 돌봄 서비스, 일자리 등이 단골 공약사항이다. 그런데 이런 논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고령화가 극소수 선진국에 한정된 행복한 고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령자 중 3분의 2가 소득 중하위권 국가에 거주할 만큼 노인문제는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팻 테인의 말마따나 “늙는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노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중 비교적 새로운 동향들이 있다. 하나는, 국제적으로 노인 문제를 인권 의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유엔 총회는 2002년 ‘노령화에 관한 마드리드 국제행동계획’을 채택하여 노인에 대한 나이 차별과 방임·학대·폭력을 중요한 인권 문제로 규정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2011년 유엔 총회에 제출한 노인 인권 문제 보고서에서는 노인들이 경험하는 네 종류의 도전을 지적한다. 우선, 나이에 따른 차별의 문제가 있다. 연령 차별은 성별, 인종, 장애, 사회경제 상황 등 여타 차별과 결합되어 나타나곤 한다.
둘째, 빈곤의 문제가 있다. 가난한 노인들은 노숙, 영양결핍, 만성질환, 식용수나 위생시설에 대한 접근, 의료혜택 부족, 저소득에 시달릴 개연성이 크다. 노인이 가구의 생계나 손자녀 양육을 책임지는 경우엔 더 심한 가난에 빠지곤 한다. 셋째, 신체적·정신적 고통, 더 나아가 성적 학대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요양시설이나 서비스의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다.
올해 3월에 개정된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학대를 “노인에 대하여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을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유엔의 접근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노령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추세를 감안하자는 움직임이다. 2050년이면 전세계 고령화율이 22%, 도시화율이 66.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10년 내에 초고령 사회가 되고 도시화율은 85%에 이를 것이다. 즉, 도시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이 노인대책의 주요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계간지 <걷고 싶은 도시> 최근호는 “노인과 도시”라는 특집을 통해 “고령친화도시” 개념을 소개한다. 고령친화도시는 우선 “활기찬 노년”을 중시한다. 나이가 들어도 삶의 질이 늘어날 수 있도록 건강·참여·안전을 위한 기회를 도시가 최적화해서 제공한다는 뜻이다. 고령친화도시는 시설요양에서 벗어나 “살던 곳에서 늙어가기”로 강조점을 이동시키며,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서 늙어가기”를 최종 목표로 삼는다. 주거 중심의 노인대책에서 사회적 관계 중심의 노인대책으로 지향점이 바뀐다. 이렇게 되면 노인을 포함한 주민공동체 모두를 아우르는 물리적·사회적 도시환경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서울시는 이미 고령친화도시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안현찬은 인상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최근 서점에는 고령사회에 관한 책들이 넘쳐난다. 대부분은 우리를 겁먹게 하고, 부지런히 적금과 보험료를 붓게 만든다. 이와 비교하면 고령친화도시는 일종의 사회적 노후 대비다. 여기에도 우리가 꼬박꼬박 부어야 할 게 있다. 살던 곳에서 활기차게 늙어가고 싶다는 동의, 이로부터 생겨나는 노인의 존중과 배려다··· 이러한 개인적 동의와 배려와 노력이 많이 모이면 사회적 합의와 태도와 실천이 된다.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보험료가 쌓일수록 고령친화도시라는 만기일은 앞당겨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노인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흥미로운 텍스트다. 거대한 청새치를 낚았지만 오히려 고기에게 끌려다니게 된 노인, 그가 표류 도중에 큰소리로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 도와주고, 이걸 같이 볼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 늙어서 혼자 외롭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천신만고 끝에 귀환한 노인을 대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노인의 소식을 몰라 애태우던 소년은 오두막집에서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울음을 터뜨린다. 쪽배 주변에 모여든 어부들은 입을 모아 노인의 안부를 묻는다. 카페 주인은 노인을 위해 우유와 설탕을 탄 커피를 소년에게 쥐여주면서 “걱정 많이 했었다고 말해줘”라고 안부를 전한다. 노인은 스페인에서 쿠바로 건너온 이주노동자 출신이다. 갈색 피부의 물라토 원주민들 사이에서 “바다 물빛 눈동자”를 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그런 사람 하나가 실종됐다고 해경이 수색에 나서고 비행기까지 동원되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산티아고는 지역사회에서 늙어가는, 가난하지만 사회적 지지망에 기댈 수 있는 복노인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유엔은 노인 인권을 위한 향후 과제 중 하나로 노인들 스스로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꼽는다. 이는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동적 접근에서 권리에 기반한 적극적 접근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보는 고령친화도시와도 통하는 것이다.
단순히 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만이 아니라 공적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노인 인권의 핵심으로 꼽으려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첫째, 여러 사회집단들 사이에 기본적인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과 노인들 간의 세대 간 연대가 없으면 안 된다. 둘째, 민주시민으로서의 지향과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전제 없이 노인 복지만으로 노인 인권을 규정한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권익의 총량을 늘리려는 이익집단식 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물론 복지는 중요하고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대 간 연대의 정신 위에 구축된 복지가 아니면 진정한 노인 인권이라고 하기 어렵다. 민주시민으로서의 공공성에 입각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노인이 많아져야 진짜 노인 인권이 바로 선다. 그런 시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부터 민주시민으로 살아온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그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공적 시민의식을 지닌 민주적 시니어, 이것이 노인 인권이 지향하는 이상적 노인상이다.
노인 문제는 따로 있지 않다. 노인 역시 전체 인간의 일부이며, 노인 문제가 인간 문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노인의 고통이 젊은이의 고통과 연결되고, 여성·소수자·이주자에 대한 멸시가 노인에 대한 멸시로 이어지는 세상 이치에 눈을 떠야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를 원하는가. 구성원 모두의 삶을 소중히 받드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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