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으로부터 유럽 독립 선언에 준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근대 이후 유럽의 역사는 ‘유럽의 독일화’와 ‘독일의 유럽화’ 사이의 갈등이다. 독일이 ‘유럽의 독일화’를 추구할 때 유럽은 전화에 휩싸였다. 이제 독일은 ‘독일의 유럽화’를 추구하며, 평화롭고 하나 된 유럽을 구현할 수 있을까?
근대 이후 유럽의 지정학은 유럽 대륙에서 세력균형의 질서였다. 유럽 세력균형의 요체는 4대 열강의 지정학적 숙명이었다. 즉 ‘독일 딜레마’, ‘영국의 영예로운 고립’, ‘러시아 수수께끼’, ‘프랑스 균형자’였다. 유럽 한가운데 위치하고 많은 인구와 잠재적인 최대 국력을 가진 독일은 유럽 세력균형의 최대 상수였다. 강력하고 통일된 독일이나, 분열되고 약화된 독일은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협했다.
1600년대 30년전쟁은 독일 딜레마와 유럽 지정학의 시작이었다. 30년전쟁의 명분은 신교와 구교 세력의 다툼이었으나, 사실은 현재 독일의 원형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신성로마제국을 견제하는 전쟁이었다. 프랑스는 구교였으나, 신교 세력에 가담했다.
30년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200여개의 왕국과 공국으로 분열됐다. 프랑스는 30년전쟁 등에서 독일 세력을 견제하는 유럽의 균형자 구실을 했다. 하지만 독일의 지나친 분열과 약화는 프랑스가 유럽 제패를 노리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침공을 패퇴시키며 유럽의 세력균형을 복원했다. 이후 러시아는 유럽, 특히 동유럽을 위협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유럽의 세력균형을 복원하는 이중적인 존재가 됐다. 이른바 ‘러시아 수수께끼’이다. 나폴레옹 전쟁 때나 나치 독일의 2차 대전 때 러시아의 역할이 말해준다.
영국은 유럽 세력균형의 최후 수호자를 자처했다. 섬이라는 지리적 위상을 이용해 유럽 대륙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국력을 축적했다. 하지만 대륙의 세력균형이 와해될 위기에 결정적으로 개입했다. ‘영국의 영예로운 고립’이다.
나폴레옹 전쟁 뒤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지나친 견제는 프로이센의 부상과 독일 통일을 허용했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5대 열강인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중에서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를 고립·견제하고, ‘영예로운 고립’의 영국을 자극하지 않았다.
비스마르크의 실각과 독일 국력의 성장은 1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1차 대전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력을 유럽으로 끌어들였다. 1차 대전 뒤 미국은 돌아갔고, 러시아는 볼셰비키혁명으로 국제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철수했고, ‘영예로운 고립’의 영국은 국력이 쇠퇴했다. 유럽 대륙에는 불만에 찬 독일 주위에 쇠약한 프랑스, 허약한 신생 동유럽 국가만이 있었다. 독일은 지정학적으로 더 유리한 입지에 섰고, 나치 독일의 2차 대전으로 귀결됐다.
2차 대전 뒤 유럽은 미국과 소련의 세력권으로 반분되는 새로운 지정학 질서에 직면했다. 미국은 애초에 독일을 3~4개국으로 분할하는 모건소 구상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동독이 소련에 점령되자 서독을 강화할 필요성이 생겼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독일을 강화하면서도 제어할 틀이었다.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나토 초대 사무총장은, 나토는 “러시아를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때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모스크바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찾아가, 나토가 동독은 물론이고 동유럽으로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독일 통일의 승인을 얻어냈다. 하지만 독일 통일 뒤 나토는 미국 주도로 동진했고, 러시아의 앞마당인 우크라이나까지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이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재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을 촉발시켰다. 그러고 나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이제 유럽에 대해 ‘나는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 미국으로부터 유럽 독립 선언에 준하는 폭탄 발언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에 맞서 그는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우리 운명을 위해 우리 스스로 싸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새로운 지정학 질서 시대를 예고하는 발언이다.
지금 유럽은 그리스 부채 위기로 남유럽과 북유럽의 갈등에다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겹쳐 있다. 유럽은 다시 독일의 자장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근대 이후 유럽을 ‘유럽의 독일화’와 ‘독일의 유럽화’ 사이의 갈등으로 규정했다. 독일이 ‘유럽의 독일화’를 추구할 때 유럽은 전화에 휩싸였다. 이제 독일은 ‘독일의 유럽화’를 추구하며, 평화롭고 하나 된 유럽을 구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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