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록키>(1976)에서 무명의 도전자 록키 발보아가 세계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에 맞서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 계단에는 아래로부터 달려 올라가 꼭대기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만세를 부르는 이들이 늘 있다. 영화 <록키>(1976)의 무대인 이곳에서 록키를 따라하는 것이다.
무명의 실베스터 스탤론을 단숨에 대스타로 만든 <록키>의 감독 존 아빌드슨이 16일 세상을 떠났다. 영화 제작 당시 아빌드슨도 무명이었다. 제작사의 홀대 속에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졌으나 대흥행을 기록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도 받았다. 영화는 시리즈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스탤론이 감독을 맡은 2편부터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오락영화였다.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감동은 이전 같지 않았다. ‘헝그리 복서’에서 ‘헝그리’가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록키4>(1985)는 국가주의 반공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아빌드슨은 14년 만에 <록키5>(1990)의 감독으로 돌아와, 과거 <록키> 분위기를 재현하려 애썼다. 보란 듯 재기하는 게 록키스러웠으나, 흥행은 참패했다.
<록키> 시리즈는 이후 1편의 정신을 되살린 <록키 발보아>(2006)로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시리즈는 <크리드>(2015)로 이어진다. 록키의 라이벌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혼외자 아들의 챔피언 도전기와 이를 돕는 늙은 록키의 이야기다. <록키>의 감독은 세상을 떠났지만, 록키 시리즈는 영화 속 록키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록키가 이처럼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춥고 배고픈 우리네 ‘마이너리티’의 아픔과 도전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록키>의 명대사다. “당신은 전성기라도 있었잖아요! 내 전성기는! 난 아무것도 없어요!”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공은 아직 울리지 않았어.”
권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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