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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메이봇 / 김영희

등록 2017-06-19 17:49수정 2017-06-19 19:37

“아침식사는 뭔가요?” “아침식사는 왜 우리가 강하고 안정된 정부가 필요한지 알려줍니다.”

말도 안 되는 이 문장은 이른바 ‘메이봇’을 풍자한 가상의 대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이름에 로봇을 합성한 ‘메이봇’은 지난해 11월 <가디언>에서 작가 존 크레이스가 쓴 이후 총리의 별명이 됐다. 어떤 대화나 연설에도 늘 “강하고 안정된 정부”만 반복한다며 비꼰 단어인데, 최근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사건 이후 해시태그(#)를 단 채 에스엔에스에 급속히 번지고 있다. 화재 발생 12시간 만에야 각료회의를 소집했던 메이 총리는 다음날 방문했던 현장에서도 피해자들은 만나지 않은 채 소방대원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그가 ‘짝다리’ 자세로 턱을 괸 채 얘기를 듣는 한 장의 사진은 분노의 도화선이 됐다. <비비시> 인터뷰에서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라는 여론이 있다”는 거듭된 질문에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동문서답만 두번 내놔 ‘로봇 오작동’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렌펠타워 화재 현장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총리. AFP 연합뉴스
그렌펠타워 화재 현장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총리. AFP 연합뉴스
존 C. 머터가 쓴 <재난 불평등>은 같은 형태의 재해가 발생할 때 부유한 나라의 사망자가 가난한 나라 사망자의 30%밖에 되지 않는다는 스톡홀름 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를 전해준다. 이번 화재는 한 나라 안에서도 재난에 ‘계급 불평등’이 존재하는 현실을 아프게 환기시켰다. 부유층 지역인 노팅힐 인근의 이 서민형 임대아파트가 리모델링될 때, 불연성 외장재를 쓰지 않아 절약한 비용은 불과 700여만원이란 보도도 나왔다. 예산감축·규제완화 같은 구조적 문제가 부각되며 최장수 내무장관을 지낸 메이 총리는 한층 궁지에 몰리고 있다.

총리실 쪽은 “구조작업에 방해될까봐” 그랬다며 억울해하지만, 시민들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공감과 연민을 보여주지 못한 정치지도자한테 싸늘하다. 세월호와 대구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찾았던 그 누구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이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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