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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자영업 대책에 부쳐 / 황보연

등록 2017-07-16 19:46수정 2017-07-17 08:49

황보연
정책금융팀장

“1년 만에 폐점한 점주입니다. 매장을 넘기고 가신 이전 사장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디 가서 월 200만원만 줘도 더 이상 이 짓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가게를 인수할 땐 몰랐는데 직접 해보고 나서야 공감이 되더군요.”

며칠 전 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단체채팅방(단톡방)에 올라온 사연이다. 기자에게 사연을 전해준 ㄱ씨도 전직 가맹점주였다. 올해 오십 줄에 들어선 그는 엔지니어 출신의 월급쟁이였다. 다니던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40대 초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이후 ㄱ씨는 피시방·피자집 등 업종을 갈아타며 자영업자로 일해오다 몇달 전 장사를 접었다. 한때 피자집 사장님이었던 ㄱ씨는 요즘 피자를 나르는 ‘배달 알바’가 됐다. 그는 “경쟁 점포가 갈수록 많아지다 보니, 인건비를 아끼려고 알바를 내보내고 연중무휴 밤낮없이 뛰어도 월 200만원 벌기가 어렵더라”고 했다.

과당경쟁과 내수 부진, 대기업 골목상권 장악 등에 힘겨워하는 수많은 ‘ㄱ씨들’의 사연이 넘쳐난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을 비롯해 대부분 자영업체의 매출이 정체되고 영업이익률이 하락했다. 이렇다 보니, 창업 뒤 3년 내 60%가량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5.5%(올해 6월 기준·무급가족종사자 포함)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8%·2011년)보다 훨씬 높다. 한 예로, 인구 1천명당 음식점 수를 비교하면, 미국은 0.6개이지만 우리는 10.8개로 과밀 정도가 심각하다. ‘괜찮은 일자리’가 차츰 줄면서 임금근로 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취업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자영업으로 흘러든 결과다.

포화상태인 자영업 시장에서 힘겨워하면서도 ‘사장님들’에겐 ‘퇴로’가 마땅치 않았다. 일자리 질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을 하느니, 자영업에 머무르는 경우도 제법 된다. 상당수는 실직과 자영업 진입, 비정규직 취업을 전전하며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와 있다.

과거 정부는 여러 차례 자영업 대책을 쏟아냈지만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과밀업종에 대한 신규 진입 문턱을 높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를 임금근로 시장으로 유인하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당장 자영업자의 경영 애로를 덜어주는 지원 위주로 대책이 짜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16일 발표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대책은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우선 이번 대책은 전날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올리는 결정이 나오면서, 영세 업체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과거 추세(최근 5년간 인상률 7.4%)를 웃도는 인상분을 정부 재정 3조원을 투입해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내수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을 목적으로 내건 새로운 정책실험으로 여겨진다. 긍정적 효과를 낼 경우, 저임금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앞으로 계속 오를 최저임금을 부담하기 어려운 정도로 부실한 영세 업체들이 임금근로 시장으로 편입되도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가맹점주의 교섭력 강화로 가맹본부와 점주들의 불공정한 관계를 바로잡겠다는 등 종전보다 진일보한 자영업 대책이 이번 대책에 포함된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자영업 포화구조에 따른 과밀업종 구조 개선을 위해 임금근로자로의 전환’을 공약한 바 있지만 아직 큰 틀에서 구체적인 밑그림이 보이지는 않는다. 정책 목표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이행 경로와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대책에서도 관련 내용은 대책 한 귀퉁이에 선언적으로 담기는 데 그쳤다. 2014년 대책 발표 때 도입 된 ‘희망리턴패키지’(폐업 지원)를 강화하겠다는 정도다. 따라서 정부는 과당경쟁의 늪에 빠진 자영업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보다 세밀한 복합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그 시작은 질 좋은 임금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비자발적 자영업 진출을 줄이고 자영업자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안전한 퇴로를 깔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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