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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진보 집권 10년 플랜 / 백기철

등록 2017-07-18 17:24수정 2017-07-18 19:04

백기철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 열흘이 지났다. 지지율로 보면 무난한 출발이다. 그렇지만 출발이 고공행진이라 해서 역대 대통령들의 고질적인 ‘하향 사이클’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남이 간 길을 조금 수월하게 가는 것하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

어느 때건 나라 운명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앞으로 5년은 특히 그렇다. 한반도의 외교적 교착이 분수령을 향해 치닫고 있고, 내적으론 격차 해소의 기본틀을 갖춰야 한다. 예단할 순 없지만, 보수의 지리멸렬로 1기 민주정부 10년에 이어 ‘2기 민주정부 10년’을 바라볼 수도 있다. 진보도 이제 나라의 백년대계를 보다 실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현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브루노 크라이스키 총리는 1970년부터 13년 집권하며 오스트리아를 대표적인 강소국으로 만들었다. 집권 내내 사회당 단독정부를 이끌었지만, 당내에선 실용주의적 우파였다. 가톨릭과 역사적 화해를 했고, 합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파트너십을 나라의 핵심 요소로 존중했다.

크라이스키는 완전고용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는데, 확장 재정을 통해 실업률을 매우 낮게 유지했다. “수십만의 실업자를 만드느니 수십억의 빚을 지겠다”는 그의 말은 완전고용의 상징이었다. 1974년 노동개혁으로 주 40시간 노동, 최소 4주 휴가, 요양휴가 등을 도입했다. 결혼보조금, 무상 대학교육, 출산휴가가 도입됐다. 전방위 외교로 빈을 국제무대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크라이스키의 실용주의적 개혁노선을 떠받친 것은 포용적 리더십이었다. “누구나 24시간 내에 총리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전화번호를 공개했다. 적자 재정에 반대하던 이를 국립은행 총재로 앉히고, 자신보다 왼쪽에 있는 이를 법무장관에 기용해 강력한 사회개혁을 추진했다. 노동자 복지 증진이라는 사민주의 목표에 충실하면서도 국민 전체의 이익과 조화시키는 점진적·실용적 접근을 했다.(<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안병영, 문학과지성사)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국가의 앞날을 좌우하는 결정적 시기들이 있다. 오스트리아가 크라이스키를 중심으로 뭉쳐 현대복지국가로 거듭났듯, 우리도 이제 역사적 전기를 마련해야 할 때다.

촛불혁명이 요구한 나라다운 나라는 적폐 청산만으론 되지 않는다. 10년, 20년, 100년을 내다보며 나라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되 실용적·점진적 접근을 통해 하나하나 결실을 맺어야 한다. 촛불을 무위로 돌리려는 반개혁은 용납할 수 없지만, 적폐 청산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는 단순히 진보의 나라가 아니다. 보수-진보의 극한 대결로는 어느 쪽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나라다운 나라의 주요 조건은 보수-진보의 공존 틀을 만드는 일이다. 일상적 정치과정에서, 또 개헌을 통해 이를 공고히 해야 한다.

올여름을 고비로 개혁 전선은 더 달아오를 것이다. 그럴수록 경중과 선후를 따져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진보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돌파해야 하는 과제라면, 탈원전은 장기적 안목으로 공론을 모아야 한다. 검찰 개혁이 촛불의 지상명령 같은 과제라면, 교육 개혁은 그야말로 백년을 바라봐야 한다. 북핵은 생존의 문제여서 순위조차 매기기 어렵다.

진보의 꿈은 함께 이뤄가는 것이다.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2기 민주정부 10년의 서막을 여는 심정으로, 5년의 초입에서 차분히 좌우를 살필 때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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