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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미군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 백기철

등록 2017-08-15 17:36수정 2017-08-15 19:33

백기철
논설위원

주한미군 기지촌 여성, 다시 말해 미군 위안부 문제가 국내 언론에 본격 조명된 건 ‘김정자, 나는 누구인가’(2014년 7월5일치 <한겨레> 1면)라는 기사가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 뒤 도쿄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한나절 토론하면서 너무 다른 두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꿰는 공통 기반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미군 위안부가 떠올랐다. 국가가 집창촌을 사실상 관리했고, 성병 검사를 하면서 강제로 격리했는가 하면, “미군한테 잘해야 나라가 잘된다”는 식의 정신교육까지 시켰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미군 위안부를 조명하는데, 선진국인 일본이 훨씬 심각한 일본군 위안부에 눈감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미군 위안부가 전후 일이라면,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 때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여성이 제국의 군대에 짓밟혔다. 같은 인권유린이지만, 정도 면에선 차이가 크다.

한-일 문제는 민족 관점과 별개로 인류 보편 가치라는 공통 기준으로 보면 윤곽이 뚜렷해진다. 예를 들어,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를 검찰이 기소하자 국내에서 반대 성명을 낸 건 그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학문 자유를 위해서였다.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 역시 언론 자유 관점에서 비판적이었다.

우리 내부 문제를 휴머니즘 척도로 가지런히 볼 수 있다면, 바깥으로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것은, 일본에 지배당한 민족적 울분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짓밟힌 영혼을 위로하고 그 신산한 고통을 보상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10년 전 미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처음 채택한 건 그 휴머니즘적 울림에 세계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는 악순환에 빠져 있지만, 그럴수록 보편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과거 아일랜드의 잦은 폭력 사태에서 보듯 이웃한 두 나라가 식민 지배-피지배였던 경우 관계는 험악하기 마련이다. 합리적으로 보기보다 민족 관점이 우선한다. 위안부 문제는 아베의 일탈적 역주행으로 크게 악화됐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몰역사적 대응으로 길을 잃었다. 해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편 가치에 입각해 변함없는 주장과 요구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극일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일본에 항시 무언가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듯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매번 접근하면 우리는 항상 일본에 피해자이고 억울한 민족으로 남는다.

극일 차원에서 소녀상 문제도 좀더 폭넓게 접근했으면 한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평안한 곳에 제대로 모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광화문광장에 모시거나, 위안부 전시관을 만들어 모실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일본의 성의있는 사과와 배상이 필요하다. 과정이야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도록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올해 초 법원은 미군 위안부 소송에서 국가의 강제 격리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이들의 인권침해를 조사할 법안도 국회에서 발의됐다. 내년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희생당한 민간인 문제를 다룰 시민법정이 열린다. 이들 문제에 열심일수록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광복 72돌을 맞아 다시 한번 극일을 생각한다. 우리가 한발 물러섬으로써 진정으로 승리하는,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함으로써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우위에 서는 민족으로 거듭날 수는 없을까.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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