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퇴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다시 한반도 정세의 유동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국수주의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큰 영향을 준 배넌에게 한반도 문제는 중국과 갈등의 부속물이다. 김정은 같은 불안정한 통치자에게 우선순위를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전통 우파 출신 안보팀은 북한을 강력한 대응이 요구되는 우선적인 위협으로 본다. 배넌은 경질되기 직전에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한 인터뷰에서 “검증 가능한 북핵 동결과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 협정”,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 잊어버려라”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이런 한반도 관련 발언이 중국에 대한 흔들림없는 무역제재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상호확증파괴 논리가 그 자체로 억지력의 근원임을 감안하면, 중국에 대한 강경한 무역제재를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북핵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없어서 중국에 그 해결을 매달리지 말고, 북핵이 개발된 이상 서로 핵 억지력이 있기 때문에 도발과 전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정직한 중재자로서 김정은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로 중국의 무역관행에 대한 불만을 지금 늦춰야 한다는 희망사항의 덫에 빠지지 말고, 중국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트럼프가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해 위협과 대화를 널뛰기한 배경의 실마리가 나온다. 첫째, 북핵을 둔 중국에 대한 압박은 대중 무역제재 명분을 찾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북한이 직면할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뒤 그동안 벼르던 중국에 대한 통상법 301조 발동을 결정한 데서 보인다. 둘째, 북한에 대해 냉온탕을 오간 트럼프 행보는 그 협박 대상이 중국이고, 유인 대상은 북한이라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은 미국과 중국의 세계대전을 상정하는 배넌의 묵시록적인 세계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미 온라인 뉴스사이트 <쿼츠>가 분석했다. 이제 문제는 배넌이 퇴출되고 난 뒤 트럼프 정권의 북핵 대처다. 대외문제에 대한 미국의 간섭, 특히 군사력 간섭을 반대해온 배넌의 퇴출은 분명 미국 우파의 전통적 대외 개입주의자들의 입김을 크게 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는 기회와 위기의 가능성을 모두 높인다. 미국 조야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화염과 분노’ 같은 발언은 전에 비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는 트럼프의 그런 발언이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면서 미국의 선택지만 축소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좀더 진지하게 북핵 문제 해법에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북핵 문제를 대중 무역전쟁과 독립시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주도하는 외교 우선 해법에 더욱 충실할 것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선제타격이나 예방전쟁 등의 강경책에 대한 가능성도 높일 것이다.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은 ‘예방전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수전 라이스 전 안보보좌관의 “우리는 냉전 때 수천발의 소련 핵무기를 인내한 것처럼 북한의 핵무기를 인내할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해 맥매스터는 최근 <에이비시>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과 같은 정권에 대해 어떻게 그런 것을 적용할 수 있냐”고 반박했다. <뉴욕 타임스>는 21일치에 배넌 퇴출 이후 ‘백악관에서 북한에 대한 예방전쟁 얘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배넌이 있건 없건 트럼프는 트럼프일 것이다.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그의 정책은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배넌 이전에는 ‘말은 거칠게 하고, 작은 몽둥이를 들었다’면, 배넌 이후에는 “말은 부드럽게 하고, 큰 몽둥이를 들어라”(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라는 미국의 전통적인 개입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반도에는 기회뿐 아니라 위기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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