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노동자 지난 7월부터 5천명의 서울 청년에게 매달 50만원이 입금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서 온갖 모욕을 당했던 청년수당이다. 최근 청년수당 누리집(홈페이지)은, 활동보고서에 대한 문의로 도배되고 있다. 청년수당은 2개월 동안은 수혜자에게 무조건 지급되지만, 이후부터는 활동보고서를 제출받아 부적합한 사람을 탈락시킨다. 5천명의 보고서를 모두 심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평가와 탈락에 대한 불안과 공포다. 수당을 받기 위해 수혜자들은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야 했는데, 여기서 수당 사용에 대한 의미심장한 안내가 나왔다. ‘열심히 공부하다 먹는 치킨은 되지만, 클럽 다녀와서 먹는 치킨은 안 된다.’ 이에 불안했던지 누리집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공부하다 머리 식히려고 영화를 보는 것은 괜찮나요?’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놓여 있는데 이것이 제도화되어버린 셈이다. 누리집에 올라온 2천건의 질문은 제도 자체의 이해 부족이 아니라 탈락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보여준다. 이해는 간다.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수반되는 지원에는 오히려 노동의욕을 저하시키는 함정이 있다. 30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은 수당을 받지 못한다. 수당을 받다가 취직을 하거나 노동시간이 늘면 탈락하니 지원을 받는 동안은 일을 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 이것을 ‘실업함정’이라 부른다. 실업함정은 한국의 저임금 노동시장과 연관이 있다. 수당을 포기하고 취직한 곳에서 최저임금을 받는다면, 국가지원을 받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이 ‘빈곤함정’인데, 실업 상태에서 50만원의 수당을 선택하든 취업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선택하든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이러한 근로연계형 복지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청년수당 신청을 위해 필요한 각종 서류와 복잡한 절차는 복지 신청 자체를 노동으로 만들어 참여율을 떨어뜨린다. 1만8888명을 지원하는 강원 일자리 구직활동수당에는 220명이 신청하는 데 그쳤고, 5천명을 지원하는 경기도의 ‘청년구직지원금’에는 5329명이 신청했다. 사회적 정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복지를 획득하는 과정 자체가 경쟁적인데다가 많은 노동이 들기 때문에 제대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경멸도 이어진다. 공동체와 연대의 힘에 기반을 둔 지원정책이 오히려 연대를 해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최근 기본소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헌법에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보다 방향과 철학에서만큼은 훨씬 좋은 정책이다. 수혜자들이 불안을 느낄 필요도, 자기검열을 할 필요도 없다. 이들을 심사하느라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이 밤을 새울 필요도 없다. 당장의 취업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러 도전을 할 기회를 주는 것,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공동체가 얼마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투자가 아닐까. 청년들의 통장에 조건이 아니라 자유가 입금되길, 청년수당 카드가 기본소득 카드로 바뀌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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