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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개혁하라, 민란의 시대를 넘으려면

등록 2017-08-29 18:32수정 2017-08-29 19:11

서구가 주도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다섯 차례의 장기 사이클을 거쳤다. 각 사이클은 20~30년의 경기 상승기와 하강기를 되풀이하며, 20세기 이후에는 사이클의 주기가 40년 정도로 고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각 사이클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기술과 시장, 제도를 갖는다.

다음 사이클은 2020년대 초반에 시작되며, 각국은 대외 팽창보다 내부 개혁을 더 지향하게 될 것이다. 기술로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탈석유 에너지 등이 기반이 될 것이다. 민란의 시대는 당분간 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각국의 미래는 내부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다?.

지구촌의 대중이 들썩인다. 선진국과 개도국, 동과 서를 가리지 않고 불만이 분출된다. 나라에 따라 선거 이변으로도 나타나기도 하고, 거친 대중집회를 넘어 혁명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중동과 유럽에서 일상화한 테러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본다면, 민란이 잇달았던 19세기 초·중반의 조선시대를 연상시킨다. ‘글로벌 민란의 시대’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도 이런 시대의 한 모습이다. 이 두 사건을 지지한 사람과 다른 많은 대중집회 참여자들은 같은 부류일까? 얼른 봐도 주도 세력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반세계화 집회 및 이른바 ‘점령하라’ 시위의 주도자는 민주당 좌파 성향이 강했다.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더 진보적인 버니 샌더스 쪽이었다. 하지만 집회 참여자 상당수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는 움직일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기득권층에 대한 혐오가 그것이다. 노동당을 지지해온 영국 노동자와 젊은층의 상당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올봄 프랑스 대선에서도 전통적으로 사회당 지지세력이었던 젊은층 일부는 극우파인 마린 르펜을 찍었다.

기득권층 가운데 핵심은 세계화를 추진해왔거나 세계화한 체제의 삶을 누리는 사람이다. 수십년 동안 이어진 신자유주의 시대는 탄탄한 ‘글로벌 엘리트’층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보여주는 대사건으로 여겨지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도 세력이 위축되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주역은 초국적 기업과 금융계다. 이들 주변을 글로벌 엘리트를 자처하는 정치인과 학자, 젊은 전문직 종사자, 언론인 등이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세계시민주의를 내걸고 신자유주의를 끌고 간다. 경제위기 이후 다른 부문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기에 초국적 기업과 금융계는 더 눈에 띈다. 위기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미국 월가의 금융기업은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받았다. 하지만 바뀐 건 별로 없고, 부담은 국민 전체에 전가됐다. 위기를 혹독하게 겪은 것은 그리스·포르투갈 등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나라의 중산층·서민과 경제 기반이 약한 개도국들이다.

문제의 근원에 신자유주의가 있고 신자유주의를 담지하는 주체가 초국적 기업과 금융계라면 해법의 핵심도 이들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달려 있다. 이들을 어떤 마을의 중핵 기업이라고 생각해보자. 크게 두 가지 대응이 가능하다. 첫째는 트럼프식으로 국수주의적 조처를 하는 것이다. 주된 수단은 보호주의, 중상주의, 인종주의 등이다. 문제의 근원을 그대로 둔 채 장벽을 쌓아 모순을 풀겠다고 하는 꼴이다. 결과는 무역이 줄고 부가 흔들리며 나라 안팎에서 긴장과 적대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둘째는 초국적 기업과 금융계를 적절하게 개혁하고 제어하면서 산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분배를 확충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힘들고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가려는 나라는 많지 않다.

서구가 주도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 이후 다섯 차례의 장기 사이클을 거쳤다. 콘트라티예프 파동이 대체로 이와 일치한다. 각 사이클은 20~30년의 경기 상승기와 하강기를 되풀이하며, 20세기 이후에는 사이클의 주기가 40년 정도로 고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각 사이클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기술과 시장, 제도를 갖는다.

첫째는 1780년에서 1848년까지다. 1815년까지가 상승기이고 그 이후가 하강기다. 면방직과 철 생산 기술이 중심이며 운하, 범선, 유료 도로가 주된 교통수단이다. 이 기간을 1차 산업혁명기라고 한다. 둘째는 1848년부터 1895년까지다. 1873년까지가 상승기로 철도와 증기엔진, 공작기계 기술이 중심이다. 교통·통신 기반은 철도, 전보, 증기선이다. 이 시기와 셋째 시기 초반이 2차 산업혁명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1895년에서 1940년까지다. 상승기는 1918년까지다. 전기장치와 중화학 공업이 중심이며 강철로 만든 철도·선박과 전보로 교통·통신을 했다. 넷째는 1940년에서 1980년까지로 자동차, 디젤엔진, 비행기, 정유공장의 시대다. 1973년까지가 상승기다. 라디오, 고속도로, 비행기가 주된 교통·통신 수단이다. 다섯째는 1980년부터 시작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통상 2001년까지를 상승기로 잡는다. 넷째 시기의 뒤쪽과 다섯째 시기 전반부가 3차 산업혁명기 또는 정보통신혁명기다.

각 시기는 일정한 체제에 상응한다. (신)중상주의, 자유주의, 독점자본주의, 복지국가(수정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동아시아 나라들은 자유주의 이후 시기부터 지구촌 자본주의에 본격적으로 동참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중상주의에 자유주의를 덧붙인 국가자본주의를 거쳐 독점자본주의로 넘어갔다. 그래서 지금도 자유주의가 약한 편이며, 자유민주당이 1950년대 이후 60여년 동안 사실상 일당독재를 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화한 우리나라는 중상주의·자유주의·독점자본주의를 모두 버무린 국가자본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시작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로 바로 건너뛰었다. 자유주의는 반공자유주의라는 기형적 형태로 왜곡됐으며,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게 복지가 취약하다. 신자유주의에 짓눌리고 있는 복지국가 체제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은 지금도 중요한 과제다.

장기 사이클의 하강기에는 다음 사이클, 다음 자본주의, 다음 체제의 실마리와 동력이 나타난다. 중상주의 단계에서 국민국가 체제가 확립됐으며, 이후 부르주아 층이 두터워지면서 자유주의 확산과 더불어 현대 민주주의의 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독점자본의 세력을 키웠고, 독점자본과 일체화한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 불행한 결과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역설적이게도 2차대전 때의 전시자본주의 경험은 이후 복지국가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전후체제의 안정적 발전은 경제의 세계화를 촉진했으며, 이는 새로운 위기를 낳아 신자유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다.

각 사이클의 큰 흐름으로 대외 팽창 지향(중상주의, 독점자본주의, 신자유주의)과 내부 개혁 지향(자유주의, 복지국가)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긴 시야에서 ‘통합과 개혁의 변증법’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경제와 체제는 더 큰 범위로 통합돼간다.

이제까지의 패턴에서 유추하면 다음 사이클은 2020년대 초반에 시작되며, 각국은 대외 팽창보다 내부 개혁을 더 지향하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것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모르지만, 신자유주의가 간판만 바꾼 형태는 아니어야 한다. 기술로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 탈석유 에너지 등이 기반이 될 것이다.

정치세력으로 볼 때는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던 우파보다 좌파에 더 큰 기회가 있을 법하다. 좌파 정치세력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거의 모든 주요 나라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았으나 대부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실제로는 우파 정치세력이 더 두드러진다. 눈에 띄는 나라가 독일이다. 중도보수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러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기면서 4선을 바라본다.

많은 나라에서 기성세력과 새로운 세력의 대결 구도라는 양상이 관철되는 것은 강한 반엘리트 정서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가운데 극우 성향이거나 강한 이미지를 구축해 장기집권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은 불길하다. 일본, 러시아, 터키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 나라의 현재 집권층이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를 담보할 세력이 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새 체제의 모습은 아직 흐릿하다. 민란의 시대는 당분간 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각국의 미래가 내부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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