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논설위원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보도한 아침 신문에서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김정은과 네 ‘측근’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를 하는 장면이다. 수소탄 실험이 합리적 결정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북한이 내보인 것인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위태로워 보였다.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33)은 손짓하며 말하고 있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89), 내각 총리 박봉주(78), 군 총정치국장 황병서(68), 당 중앙위 부위원장 최룡해(67)는 수첩에 받아 적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가 무척 초라하다. 할아버지, 아버지뻘 되는 이들이 ‘최고 존엄’ 말을 묵묵히 받아 적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회고록에서 옛 소련 몰락의 서막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썼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농업 서기였던 고르바초프도 모를 정도로 극소수가 전쟁을 결정했다. 전체주의 히틀러는 아무런 내부 통제 없이 개인기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국제정치로 보면 빈털터리 김정은이 미국에 맞서 핵을 붙들고 있는 건 합리적이고 수미일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 내부가 정말 합리적으로 돌아갈까? 역사에 비춰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상식이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일탈한다.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되고 이복형 김정남이 살해되는 장면이 이를 웅변한다.
남쪽의 대화 노력이 부족해서 김정은이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식의 내재적 접근은 자기비하적이다. 북한은 히틀러나 옛 소련처럼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으론 허망하기 짝이 없게 굴러가고 있는지 모른다. 김정은이 궤도 이탈은 하지 않을 것이라 방심해선 안 된다.
북한 조선중앙TV가 3일 공개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소설 <남한산성>에서 척화파와 주화파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김상헌은 “싸움으로 맞서야 화친도 열린다”고 하고, 최명길은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는 게 도리”라고 한다. 인조는 그 와중에 설을 맞아 명나라 천자를 향해 절하는 예를 한다. 북핵 관련 일만 터지면 한쪽은 강공하라 하고, 한쪽은 대화하라며 갈라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년 세월 동안 10년은 북한과 대화해봤고, 그 뒤 10년은 싸울 듯 다그쳐도 봤다. 세번째 10년은 어찌할 것인가? 김정은은 히틀러처럼 좌충우돌 밀고 오는데 우리는 20년 써온 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대화든 압박이든 뻔히 보이는 수로는 어렵다. 10년 햇볕정책이 꼭 유효한 것 같지 않고, 그 뒤 10년 압박은 무슨 결실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원점에서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뾰족한 수가 별로 없다. 보수 쪽에선 전술핵 도입 정도가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나마 카드로 논의해볼 만하다. 진보는 국면 전환을 위한 특사 파견 정도다. 특사 파견은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 대화할 거면 판을 바꾸는 큰 수를 두어야 한다.
정권이 중심을 잡고 압박이든 대화든 결단력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이쪽저쪽 눈치 보며 시늉만 해선 곤란하다. 자칫 주변 4강에 이리저리 떠밀리고, 내부에선 지지층이 이반할 수 있다. 외교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다만, 전쟁은 안 되며 남북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문재인 정부에 수임한 대의에 해당한다.
명·청 교체기에 명민하게 대처한 광해군이 요동에 출병하는 장수에게 준 밀지는 ‘관변향배’였다. 변화의 추이를 면밀히 살펴 방향을 정하라는 뜻이다. 무슨 주의, 주장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실 정세를 면밀히 살펴 한반도의 안녕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 과단성 있게 나아가야 한다.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