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문재인 안보팀, 동맹 균열내는 트럼프에 맞서라

등록 2017-09-11 18:15수정 2017-09-11 19:07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전후해 문재인 정부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즉자적인 강경 대처로 일관한다는 비판이 높다.

북핵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협상에 임해본 전문가와 당국자들이 일치하는 견해가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결국 미국과 북한이 풀어야 하고, 북한은 미국과의 거래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과의 거래에 소극적인 미국을 견인해서 진지한 협상의 장을 만드는 주도적 구실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자면 미국이 원하는 한-미 동맹 관계 구축을 위해서 미국의 요구사항들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비판이 격렬한 사드 배치 강행이나, 웃음거리가 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도 이해가 간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엄청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유공급 중단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에서 가장 원하는 사항이다. 푸틴이 이미 원유공급 중단에 반대 의사를 밝혔는데도,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정상회담에서 그걸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으라고 한 소리가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수용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응하면서 결국 미국을 6자회담에 끌어들여 9·19 성명을 이끌어내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 논의까지 갔다. 10·4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했다. 이런 북-미 협상이 가능했던 것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쟁 파탄으로 궁지에 몰렸던 상황도 작용했다. 그 이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은 수모를 참아가며 집요하게 부시 대통령을 두드려서 북-미 협상으로 끌어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제네바협정을 맺고 클린턴 대통령 방북까지 거론한 것도 김대중 대통령과 그 외교안보팀의 확고한 평화구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핵 비확산 체제에 관심이 컸던 점도 작용했다.

트럼프와 그 행정부는 과연 전임 정부처럼 북한과 진지한 협상에 나설 계획과 의지가 있는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 속에서 트럼프는 이란의 핵개발을 중단시킨 국제협정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한다. 행정부 내에서도 이란이 핵 협정을 위반한 증거가 없다고 밝히는데도, 트럼프는 이란이 벌이는 불량한 행동에 대한 징벌로 핵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 협정을 파기할지는 미지수이나, 그는 분명 미국의 안보에 최대 위협이 될 핵 비확산보다는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는 첫 중동순방에서 이란에 적대적인 수니파 보수왕정들을 반이란 전선에 결속시키는 데 주력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사상 최대의 무기 판매를 했다.

트럼프는 북핵 위기로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 잊어버려라”라는 발언을 한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이 점을 시사해준다. 그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상호확증파괴 논리가 그 자체로 억지력의 근원임을 고려하면, 중국에 대한 강경한 무역제재를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북핵을 핑계로 중국에 강경한 무역제재를 해서 미국이 경제적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는 논리다.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국무부 아시아태평양차관보도 아직 임명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급기야 “한국의 북한과의 유화적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국을 비난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위협했고, “한국에 수조원대의 무기 판매를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란 핵 협정 파기를 미끼로 사우디에 무기를 팔아먹는 행태와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한-미 동맹을 균열낸다는 비난이 비등하고 있다. 트럼프도 북핵 위기 해소를 바라겠지만, 한국이 원하는 진지한 협상 의지는 별개 문제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은 트럼프에게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가?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 없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전임 장관들과 달리 세련된 스타일이 돋보이는 강경화 외교장관, 군사논리에 입각해 강경 군사대응만 쏟아내는 송영무 국방장관 등이 사실은 막후에서 트럼프의 참모들과 멱살잡이라도 하며 한국의 논리를 관철 중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북핵 위기에서 총알받이로 나섰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바보 전략’인가 ‘바보’인가 1.

윤석열 ‘바보 전략’인가 ‘바보’인가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2.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박현 칼럼] 3.

사악한 자, 뻔뻔한 자, 비겁한 자 [박현 칼럼]

반짝이는 박수갈채 ‘수어’ 결혼식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4.

반짝이는 박수갈채 ‘수어’ 결혼식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사설]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헌정유린 단죄’ 진정한 첫걸음 5.

[사설]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헌정유린 단죄’ 진정한 첫걸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