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 전술핵을 우리나라 땅에 다시 들여와 ‘공포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은 실익과 현실성이 거의 없는 플라세보(심리적 효과를 겨냥한 가짜 약)를 좇는 것으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정치·이념 공세 성격을 띤다.
전술핵 재배치는 동북아 전체의 안보구조를 위태롭게 한다. 중국은 주변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는 상황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긴밀한 군사 관계를 추구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미 사드 문제로 악화한 한-중 관계가 냉전 이상의 적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전술핵은 전략핵보다 위력이 덜하고 운반 수단의 거리가 짧은 핵무기를 말한다. 전략핵·전술핵이라는 개념 자체가 냉전 시기 미-소 대결에서 나온 것이므로, 소련을 겨냥해 미국 본토나 난바다에 배치된 핵무기는 전략핵, 유럽·아시아 등에 전진 배치된 핵무기는 전술핵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전술핵이라 하더라도 파괴력은 엄청나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는 모두 전술핵 수준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 전술핵을 우리나라 땅에 다시 들여와 ‘공포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은 실익과 현실성이 거의 없는 플라세보(심리적 효과를 겨냥한 가짜 약)를 좇는 것으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정치·이념 공세 성격을 띤다.
우선 전술핵은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억제력 향상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미의 재래식 군사력은 북한보다 압도적이다. 이것이 대북 억제력이다. 전술핵이 주한미군 기지에 있다고 해서 억제력이 더 커지지 않는다. 거꾸로 북한 핵무기 역시 한·미의 재래식 전력에 대한 추가 억제력을 거의 제공하지 못한다. 북한의 억제력은 수도권과 군 기지를 집중적으로 포격해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오히려 전술핵은 북한에 새 공격 목표물을 제공한다. 전술핵 기지는 유사시 북한 미사일이나 생화학전 부대 등의 초기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핵전쟁을 상정한 공포의 균형은 이미 충분히 이뤄져 있다. 북한은 사멸을 감수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전술핵 배치론자들은 전술핵이 핵무기의 사용과 의사 결정을 위한 시간을 단축할 거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미국은 현재 핵탄두 탑재 미사일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만을 운용한다. 전술핵을 재배치하려면 핵폭탄 등을 별도 운반 수단과 함께 갖다 놓아야 한다. 이들 운반 수단의 신뢰성은 전략핵보다 훨씬 떨어진다. 전략핵은 수십 분이면 한반도에 도달하며, 핵잠수함이 근해에 있다면 시간이 더 단축된다. 게다가 핵 사용 시간은 무기 위치보다 전략적 판단이 얼마나 빨리 이뤄지는지에 더 좌우된다. 전술핵 배치와 신속한 판단은 별개다.
셋째, 전술핵 재배치는 동북아 전체의 안보 구조를 위태롭게 한다. 중국은 주변에 미국 핵무기가 배치되는 상황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긴밀한 군사 관계를 추구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악화한 한-중 관계가 냉전 이상의 적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핵무기까지 염두에 둔 군사계획을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러시아 또한 미국이 자신과 맺은 핵 협정(중거리핵무기 폐기 협정)을 깬 것으로 보고 크게 반발할 것이다.
넷째, 한-미 동맹에는 미국이 수십 년 이상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과 맺어온 ‘핵 협력 프로그램’이 없다. 이런 프로그램이 없으면 핵무기 정보와 작전을 공유하지 못한다. 1960년대 후반 950기에 이르렀다가 1991년 말 모두 철수한 주한미군 전술핵은 우리와 무관하게 운용됐다. 전술핵이 재배치되더라도 미국이 모든 것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안보를 더 취약하게 한다. 전술핵 옹호자들은 흔히 유럽 배치 전술핵을 거론하지만, 이들 핵은 나토의 집단적 안보 공약을 상징하는 데 그친다. 1971년 7300기나 됐던 유럽 전술핵은 150여기까지 줄었다. 미국은 동맹국의 핵 확장 억제를 위해 거의 전적으로 전략 핵무기에 의존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런 방침을 갑자기 바꿔 전술핵 비용을 지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전술핵은 우리 군의 작전 능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는 영토가 작고 인구가 많다. 핵을 사용하면 우리 군과 남북 민간인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뒤따른다. 한·미가 핵 공격 준비와 재래식 작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핵탄두, 운반 수단, 지휘 통제 시스템, 관련 인력 등에 대한 안전 조처에도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
여섯째, 한반도에서 핵을 포함한 대북 억제에 대한 핵무기의 기여는 재래식 군사력과 비교할 때 작다. 과거 핵무기가 맡았던 임무의 상당 부분은 정밀 유도 무기로 넘어갔다. 지하시설 공격, 신속·정확한 목표물 파괴 등이 그렇다. 미국은 핵무기 보유 목적을 거의 핵 공격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제한한다. 핵무기의 군사적 역할이 위축돼온 것은 일관된 추세다.
마지막으로 전술핵 배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증산을 합리화하고 기정사실로 굳혀주는 명분을 제공한다. 국제사회의 대북 공동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일본과 대만 등에서도 전술핵 배치나 핵 개발 주장이 커지고, 핵 비확산 체제가 이완될 수 있다. 전술핵 옹호론자 가운데 일부는 전술핵이 실효성이 없더라도 비핵화 협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궁색한 논리다.
이런 내용을 모두 고려하면 전술핵 배치로 얻을 실익이 거의 없는 반면 부담은 훨씬 커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술핵 논란을 끝내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여, 사족이 될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가 확실히 중심을 잡는 한 전면전 발발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전면전이 일어날 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 도발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 지역을 선제공격(또는 예방공격)해서 확전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의 필수 전제는 둘이다. 하나는 북한이 대미 도발 수위를 전쟁 직전까지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무력으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의 한 축인 강경 민족주의자들은 중국을 최대 적으로 설정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피터 나바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정책 자문기구로 신설한 국제무역위원회의 위원장인 그는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과의 군사 대결이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팽창하려는 중국과의 충돌에서 이기거나 중국을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이들 강경 민족주의자의 주장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물론 권력분립이 잘 돼 있는 미국에서 강경 민족주의가 미국 군사·외교 정책의 주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이들이 득세해 무력을 써서라도 새 국제체제를 만들겠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고 가정하자.
전술핵 배치로 더 취약해진 안보 구조에서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인다. 핵 위협 증가를 빌미로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고, 곧 북한이 수도권 또는 미국령 괌 등에 보복공격을 하면서 전면전에 돌입한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상군 투입까지 가지 않더라도 북한은 몇 주 안에 초토화할 것이다. 중국은 이 전쟁에 개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명분이 약한데다 대미 전쟁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미-중 관계는 과거 냉전 시절 미-소 관계처럼 극도로 나빠지고, 세계는 친미파와 친중파로 갈라진다. 미국은 새로 형성되는 미-중 냉전 체제에서 패권국 입지를 굳힌다.
이런 시나리오는 과거 한국전쟁을 연상시킨다. 북한이 1950년 6월25일 개전을 주도하고,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뒷받침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미국도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49년 6월 미군 철수 이후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대비하고 있었다. 전쟁이 꼭 미국 뜻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미국은 많은 것을 얻었다. 막 형성되던 냉전 체제가 확고하게 틀을 잡았고, 전쟁을 거치면서 튼튼하게 구축된 미국 패권 시대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결국 한국전쟁은 새 체제를 위한 디딤돌 구실을 했다.
전술핵 배치가 안보구조를 악화시켜 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미국의 강경 민족주의를 고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일까.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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