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딸깍발이’가 불려나왔다. 40~50대라면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동명의 수필을 기억할 것이다. 1956년 일조각에서 펴낸 일석 이희승의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에 처음 실렸다.
딸깍발이는 늘 나막신을 신고 다녀 딸깍딸깍 유난한 소리를 냈던 남산골 샌님에게 붙은 별명. 표준국어대사전은 ‘가난한 선비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 적고 있다. 이희승 선생은 담배라도 한 모금 피우면 두 볼이 입안에서 붙을 정도로 여위고 생업에 무능하면서도 ‘앙큼한 자존심과 꼬장꼬장한 고지식’ 같은 생활신조를 지녔던 선비로 이들을 그린다. 왕에게 직소를 서슴지 않던 유림, 전란 때 봉기한 의병 두목들이 다 이 딸깍발이 기개라며, 현대인에게 “지나친 청렴은 분간하더라도 그 의기와 강직을 배우자”고 말한다.
‘딸깍발이 판사’라는 표현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가 처음 실시된 1993년 회자됐다. 당시 행정부·입법부보다 많은 고위 법관들의 재산 규모가 화제였는데, 신고 재산 6천여만원으로 단연 꼴찌였던 조무제 전 대법관에게 이런 별명이 자연스레 붙었다.
12일 청문회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전형적인 딸깍발이 판사 같다”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부모 재산까지 합해 8억6천만원이라는 김 후보자의 ‘청빈함’을 반어적으로 강조한 것일 터. 올해 고위 법관들의 평균 재산 21억원에 비하면 적은 게 사실이다.
인상적인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내 재산이 적다고 생각 않는다”는 김 후보자의 정색을 한 답변이었다. 따져보면, 한달에 200만원씩 30년을 꼬박 저축해도 못 모을 돈이다. 홑벌이 판사가 부동산 투기 않고, 주식투자 않고, 월급 모아 두 자녀 다 교육시켜 결혼시켰다. “돈 많은 게 죄냐”를 넘어 “돈 많은 게 능력”이 이데올로기처럼 된 세상. 모처럼 ‘상식’을 만났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