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 미국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스캔들은 할리우드에서 한동안 잊혔던 단어를 다시 불러냈다. 직역하면 ‘배역결정 소파’ 정도가 될 이 표현은 성관계를 매개로 여배우들의 배역이 결정되던 영화산업계의 ‘관행’을 암시한다.
1950~60년대 ‘육체파 스타’로 불렸던 조앤 콜린스는 한 영화의 주역 테스트를 두차례 받아 1등을 달렸지만, 스튜디오 대표의 성관계 요구를 거부한 뒤 배역을 놓쳤다고 주장한 적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다. 전설적인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은 자서전에서 1940년 12살이던 자신과 만난 제작자가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주디 갈런드의 전기작가는 갈런드가 16~20살 당시 엠지엠(MGM) 스튜디오 대표를 포함한 제작자들에게 수없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마릴린 먼로는 회고록에서 “일부 제작자나 감독의 눈에 할리우드는 붐비는 매춘굴”이라고 적기도 했다. 외신들이 전한 할리우드의 ‘추한 역사’ 일부다. 와인스틴의 30년 행각이 감춰져 왔던 것도 “그가 엄청난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런 남성들을 영화계에서 수없이 봐 왔다”고 배우 레아 세두는 <가디언> 기고에서 말했다.
할리우드의 남성 중심 구조는 최근 여러 비판에 직면해 왔다. 제니퍼 로런스, 에마 스톤 등 여배우들의 공개적 문제제기로 남녀 배우의 개런티 차별이 큰 이슈가 됐다. 지난해 할리우드 흥행영화 중 단지 4%만 여성 감독이었다는 연구 결과는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의 조사 착수를 이끌어냈다.
물론 이런 구조가 와인스틴 사건 하나로 완전히 바뀌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애슐리 저드를 비롯한 여배우들의 와인스틴에 대한 용기 있는 증언이 그 증거다.
김영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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