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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471인의 현자’가 선거법을 바꾼다면

등록 2017-10-26 17:52수정 2017-10-26 21:06

김영희
논설위원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은 시민참여단을 “500인의 현자”(최종참여 471명)라 불렀다. 공론조사가 만능이란 말은 아니다. 가치관이 정면충돌하거나 갈등의 골이 깊고 복잡한 사안일 경우, 제3자에 의한 양자택일식 공론조사는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해당사자들이 승복할지도 의문이다. 이럴 땐 당사자들이 포함된 테이블에서 중재를 통한 양보와 타협 과정이 더 유효하다. 반면 이런 우려가 적으면서도 시민들의 참여와 숙의가 지금 꼭 필요한 사안도 있다. 선거제도는 어떨까.

국민의 ‘대리인’을 뽑는 선거제도가 ‘그들만의 리그’가 된 지는 너무 오래다. 소선거구제 문제점과 독일식 비례대표제 필요성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게 도대체 언제인가 싶다. 요즘도 여의도엔 정치개혁특위가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에서조차 정치 담당이 아니면 무슨 내용이 논의되는지 관심이 없다. 알 길도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놓고 반대하는 건 자유한국당뿐이지만, 전원 합의가 원칙이니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지 의문이다. 비례대표를 강화하자는 쪽도 의원 수가 늘면 대신 1인당 1억4700만원에 달하는 연봉이나 연 81억원 규모의 특수활동비를 줄이겠다는 의지 표명 같은 건 없다. 정당 지도부의 비례대표 순번 매기기는 당연시된다. 이해 상충이요,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꼴이다.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처음 오른 촛불. 광장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청중도, 관객도 아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처음 오른 촛불. 광장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청중도, 관객도 아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시민 숙의로 선거제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주에서도 정당 득표율과 의원 수 불일치는 오랜 문제였다. 선거제도 변경을 위한 시민의회를 설치하겠다는 집권당 공약에 따라 2003년 하반기 구성에 들어갔다. 79개 선거구마다 남녀 절반씩 200명, 모두 1만5800명이 추첨으로 뽑혔다. 지역·성·연령별 균형이 보장되도록 2·3단계 조정을 거쳐 선거구 158명과 원주민공동체 2명, 임명된 의장까지 161명으로 최종 구성됐다.(이지문·박현지 <추첨시민의회>) 처음 몇달간은 매주 대학 정치학과 3학년 교재로 전문가와 전공 학생들 도움을 받아 학습했다. 50차례 공청회에 참가하고 1600여통 제안서를 검토했고 마지막 석달 집중적인 숙의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당과 지역구 후보에 각각 투표하는 혼합형 비례대표제일 것이라던 전문가 예측과 달리, 정당 추천 후보자들에게 유권자들이 순서를 매기는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가 선택됐다.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 선택을 극대화한 것이다.

거의 1년에 걸친 활동기간 중 중도 포기는 단 1명, 출석률은 늘 95% 이상이었다. 전체 주민의 60%가 접속한 시민의회 홈페이지는 같은 기간 캐나다에서 가장 접속량이 많았다. 이 제안은 주민투표에서 아슬아슬하게 부결됐다. 의회가 다른 사안보다 통과 조건을 까다롭게 해놓은 탓도 컸다. 하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경험은 ‘실질적인 권한’과 ‘충분한 정보 및 숙고 기간’이라는 기회가 주어지면, 시민들도 소수 전문가 그룹 못지않게 현명한 판단을 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국회가 이런 권한을 선뜻 내줄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 시민들이 요구해야 한다. 중앙선관위에서 1년간 운영하면 어떨까. 숙의 결과를 국회 본회의 토론에 부친다면 국회의 권리도 존중된다. 미국 사회학자 니나 엘리아소프는 “정치적 무관심은 타고난 시민의 습성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엘리트 민주주의의 결과물”이라 지적했다. 지난해 광장에서 시민이 민주주의의 ‘관객’이나 ‘청중’이 아님을 확인했던 우리, 시민이 바꾸는 선거제도를 이번 주말 말해보자. 촛불 1주년에 가장 어울리는 구호 아닌가.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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