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종전을 앞당긴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년 ‘계산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의 출발점이다. 논문에서 튜링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지능을 가졌다고 판단할 기준을 제시했다. “사람을 흉내내는 기계가 5분간의 대화를 통해 심판 30% 이상을 속일 수 있는가”라는 ‘튜링 테스트’다.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튜링 테스트를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동프로그램이 사이트 회원가입을 하거나 티켓을 구매하고 댓글 다는 것을 막기 위해 활용되는 캡차 기술이다. 기계가 판독하지 못하게 글자·숫자를 비틀어놓은 뒤 입력을 요구한다. “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오”라는 캡차 서비스는 ‘컴퓨터와 사람을 식별하는 완전 자동화된 튜링 테스트’(CAPTCHA: Completely Automated Public Turing test to tell Computers and Humans Apart)라는 설명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다.
<사이언스> 최근호에는 미국의 인공지능 기업 바이케리어스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캡차의 문자인증 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논문이 실렸다. 인공지능은 문자인증 체계인 리캡차, 봇디텍트, 페이팔을 각각 66.7%, 64.4%, 57.1%의 정확도로 뚫었다. 캡차는 로봇의 해독률이 1%만 넘으면 뚫린 것으로 간주된다.
기계에 사람처럼 인지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뛰어난 수준에 도달해 사람과 기계를 식별하는 기준을 또 한번 무력화시켰다. 차량번호판을 사람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학습 없이 고양이 사진을 식별해내는 등 컴퓨터 시각 인지 기능은 지속 발달하고 있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흉내내는 행위를 어떻게 식별하고 차단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계의 발전은 사람을 위협하면서 사람에게 부단한 변화를 요구하며 질문을 던진다.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사람만의 능력과 특질은 무엇인가.”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캡차 프로그램의 한 종류인 리캡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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