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14일 끝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서 주목받은 단어는 ‘인도-태평양’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미·일 각료들도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란 말을 입에 달았다.
인도양과 서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의 4자동맹 결성을 통해, 부상하는 중국을 포위하고 봉쇄하자는 개념이다. 확장된 반중 포위망이다.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개념에서 반중 포위망은 미국이 주도하는 일본-한국-오키나와-대만-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열도선이나, 일본-괌-인도네시아-오스트레일리아의 제2열도선이었다. 태평양 연안의 아시아 국가와 동맹해, 중국의 연안을 봉쇄하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개념에서 반중 포위망은 인도양과 남태평양 국가까지 확장된다. 남·동중국해뿐만 아니라 인도양 및 서태평양 해역에서도 중국을 포위·봉쇄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의 진출과 팽창을 위한, 안보와 경제에 사활적인 아라비아해에서 동중국해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남·서쪽 연안과 해로에서 원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개념은 서방 지정학의 아버지인 해퍼드 매킨더 이후 서방 해양세력이 견지해온 패권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매킨더,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로 이어지는 지정학자들은 영·미 등 서방 해양세력이 패권을 유지하려면,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압도적인 패권국가 부상을 저지하라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와 자원이 몰려 있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안지대를 서방 해양세력이 확고히 장악해야 한다는 데 일치했다.
20세기 초 매킨더는 동유럽부터 중앙아시아까지 유라시아 내륙의 중심축 지역을 통제해야만 러시아의 부상을 저지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장악하면 유라시아 연안지대로의 진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소련이 부상하자, 스파이크먼은 미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을 가지고 유라시아의 환형지대, 즉 연안지대를 통제해 소련을 봉쇄·포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브레진스키는 유라시아 대륙 동서 양쪽의 일본과 독일을 양대 축으로 미국이 확고한 동맹을 맺어서, 중국의 부상이나 러시아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진스키는 특히 러시아와 중국 주변의 유라시아 국가들을 미국 쪽으로 견인하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부상은 러시아보다 더욱 위협적이다. 매킨더는 유명한 논문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을 중국에 대한 불안한 경고로 끝맺는다. 그는 중국이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패권을 확대하면 “세계의 자유에 황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륙의 자원에 접한 연안지대를 확보하기 때문이며, 이는 중심축 지역의 러시아에는 없는 이점이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얼음에 의해 봉쇄된 해안을 가진 대륙국가인 반면, 중국은 양질의 항구를 가진 긴 연안지대의 대륙국가다. 더 나아가 중국은 파키스칸, 스리랑카, 미얀마 등을 통해 인도양 쪽으로 직접 남하하고 있다.
인도의 한 해군장교가 인도와 일본의 해군력 협력을 위해 처음으로 만든 ‘인도-태평양’ 개념은 아베 일본 총리가 2007년 인도 방문 때 의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국제무대에 떠올랐다. 그 후 10년 만에 미·일·인·오 4개국 정상들이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인도-태평양 개념이 반중 4자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주도국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내실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브레진스키의 주장처럼 중국 부상 저지의 핵심은 동맹 결성이다. 트럼프는 이번 순방에서 인도-태평양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지역 국가들에 무역 남용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고, 양자 협정으로 이를 시정하겠다고 협박했다. 아시아-태평양이든 인도-태평양이든 이 지역과 미국을 묶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무산시키고, 자국의 무역흑자를 내려고 각국에 양자 협정을 강요하는 격이다.
인도-태평양 개념의 등장으로 새로운 지정학 게임이 분명 시작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 지역 국가들에 돈을 뜯고 반중 포위망 동참도 강요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은 잘 통할 것 같지 않다.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