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어떤 사람이 비트코인을 사모았다가 최근 몇년 새 억만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주식 투자조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친구가 내게 물었다. “가상통화(암호화폐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에 대해 좀 알아?” 솔직히 잘 모른다고 먼저 고백하고, 이 글을 쓴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2009년에 쓴 ‘비트코인-피투피(P2P) 전자 캐시 시스템’이란 논문을 2014년에 읽어보긴 했다. 그가 설명한, 금융회사의 신용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거래 시스템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비트코인이 지금까지 탈없이 굴러가고 있는 걸 보면 안전성 검증은 끝난 것 같다. 그러나 비트코인에 투자해도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정 집값이 얼마냐는 물음에 ‘앞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임대료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상장사 주가라면, ‘앞으로 벌어들일 주당 순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이라고 할 수 있다. 금이나 석유에 대해서는 단위당 평균 채굴비용 이상은 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견이 있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에 값을 매기는 이론적 근거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부터가 불분명하다. 비트코인이 쓸모를 창출하기는 한 것 같다. 우선 환전 수수료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값이 지금처럼 널을 뛴다면 이 또한 의미가 없다. 비트코인을 샀다가 순식간에 거액의 손실이 날 수도 있는데, 그깟 몇푼 수수료 아끼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물론 비트코인은 다른 쓸모도 있다. 드러나지 않게 불법 거래를 하거나, 외국으로 몰래 돈을 빼낼 때 아주 쓸모가 있다. 그럴 필요가 있는 사람은 어지간한 가격변동 위험은 감수할 것이다. 이런 쓸모를 인정한다고 해도, 1비트코인이 얼마여야 하는지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시장이 결정한다고. 오, 이런! 비트코인 가격 흐름은 극적이다. 2013년 초 1만5천원이던 게 최근 1000만원을 넘겼다. 비트코인은 지난 6월까지 약 1650만개가 발행됐는데 1000만원으로 계산하면 165조원어치가 세상에 생겨난 꼴이다. 마이클 노보그래츠 전 포트리스 헤지펀드 매니저는 27일 미국 <시엔비시>(CNBC)와 한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이 내년 말 4만달러(약 4천만원)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 상승을 말하는 사람들은 암호화폐의 상징인 비트코인의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돼 있다는 점을 든다. 글쎄, 안전하고 편리한 다른 암호화폐도 많이 나온다면 굳이 비트코인을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비트코인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말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정 가격을 계산할 수 없다면, 거품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오로지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마음들이 뒤섞여 가격을 형성할 뿐이다. 그래서 가격 급변동은 타고난 운명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실제 거래에 폭넓게 쓰일 수 있을지도 나는 회의적이다. 무언가가 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너도나도 사려고 덤벼들 때, 세상엔 돈 번 사람들만 있다. 투기의 잔치판이 끝나고 나야, 추레한 잔해가 눈에 들어온다. 1630년대 네덜란드 튤립 투기의 끝에 값이 폭락했을 때, 사람들은 튤립 구근을 양파처럼 요리라도 해 먹을 수 있었다. 비트코인은 구근조차 없는 까닭에,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튤립을 사라고 권한다. 400년 주기로 폭등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냐고.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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