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팀장 지난달 20일 열린 케이비(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를 계기로 노동자 경영 참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셀프 연임’이라며 회장 선출 과정을 문제 삼아온 노동조합이 ‘주주제안’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한 일이 발단이 됐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르면, 주주 0.1%의 위임을 받으면 주총에 안건을 제안할 수 있다. 의결 정족수를 못 채워 이사회 입성은 무산됐지만, 논란은 외려 달아올랐다. 국내 주요 기업의 대주주이자 케이비금융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노동이사제’가 연기금의 손을 빌려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면서다. 노동이사제는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로,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케이비금융 사례는 노조가 주주 자격으로 추천한 경우라 성격이 다르지만, 재계에선 이를 노동이사제 도입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 쪽의 반대 논리는 대략 이렇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면, 노사 간 대립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해 결과적으로 경영권과 주주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혹은 노동이사의 등장은 정말 기업 경영에 해로운 일일까? 2004년 5월부터 3년간 현대증권 이사회에서 이루어진 ‘노동자 경영 참여 실험’은 이런 섣부른 우려를 누그러뜨린다. 공교롭게도 이번 케이비금융 주총에 오른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는 현대증권 노조 추천으로 이사회에 참여했던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다. 그의 ‘사외이사 활약기’는 지금도 새겨들을 대목이 많다. 당시 현대증권 이사회는 상당수 안건에서 8 대 1의 구도였다고 한다. 나머지 사외이사들이 모두 대주주나 경영진 의견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대기업 이사회의 흔한 장면이기도 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4월부터 2016년 3월 말까지 재벌기업 이사회 안건 3997건을 분석했더니,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이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16건(전체의 0.4%)뿐이었다. 하 변호사는 “이사회 의사결정이 그룹 총수 일가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더라. 표 대결이 이루어지면 일방적 안건 통과를 내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사회에서 내가 한 지적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의결이 보류되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 명의 이사가 들어간다고 이사회가 노조에 휘둘리는 양 엄살을 떠는 재계 쪽을 겨냥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는 당시 비상근 고문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 나오지도 않는 현정은 그룹 회장에게 달마다 3천만원씩 고문료가 지급된 문제를 제기했다. 그룹 회장에게 현금을 지원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라 안팎에선 노동자 경영 참여가 이사회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등 순기능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 중심 자본주의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바라는 노동자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기업 경영에도 이롭다는 얘기다. 특히 노동자들은 회사 정보에 정통해, 한국처럼 재벌의 독선적 경영이 문제인 나라에서 노동이사가 경영감시 수단으로 유용하다는 전문가 조언(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독일 등 다른 유럽 나라들과 달리, 주주 중심 자본주의를 중시해온 영국에서도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 보수당을 이끄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해부터 “기업 이사회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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