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논설위원
올해 초 민주당 경선에서 ‘대연정’ ‘선한 의지’ 등을 내놨던 안희정이 이번에는 ‘이견의 논쟁을 허하자’는 메시지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이견의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 문제 제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 애칭)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적폐청산 정국에서 상당수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적폐청산 전사들에게 응원과 격려가 필요한 시기에 나온 서생 같은 훈시”라는 반응은 점잖은 편이다. 온라인에선 “알맹이 없는 어휘를 늘어놓는 몽상가” “정치할 자격이 없다” “적폐세력” 등 더 센 말이 돌았다.
이 말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안희정이 ‘차기’의 길을 가려면 친문 지지자들과 대화하는 게 1차 과제인 것 같다. 친문 그룹을 설득하지 못하면, 친문의 벽을 넘지 못하면 그에게 차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한다.
한국 정치의 익숙한 문법은 싸우는 정치다. 조선시대 당쟁 이후 정치는 항상 사생결단이었다. 정치가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되면서 나라를 잃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었다.
단재 신채호가 묘청의 난을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한 건 묘청이 사대의 나라에서 중국과 맞짱 뜨자고 했기 때문이다. 단재는 묘청 이후로 ‘자주’의 흐름이 끊겼다고 했다. 단재 식으로 평가하면, 경선 당시 안희정의 도전은 조금 과장해서 ‘한국 정치 제
1의 사건’ 이라 할 만하다. 당쟁과 분열, 패거리로 점철된 근현대 정치사에서 통합과 연대로의 방향 전환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묘청이나 안희정은 둘 다 실패했다. 우리 정치에서 ‘자주’가 종종 헛소리로 내쳐지듯, 통합이나 연대를 얘기하면 실없는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통합, 연정, 협치는 폼잡을 때 하는 말이지 득점할 때는 별 소용이 없다. 실점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편가르고 싸워서 철옹성 같은 진지를 구축한 이들이 결국 승자가 된다.
정치의 문법도 이젠 바뀔 때가 됐다.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성숙한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말로만 되뇔 게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산해야 한다.
일본 메이지유신 시절 국민영웅 사카모토 료마는 온몸을 던져 이른바 ‘삿초동맹’을 이끌어냄으로써 근대로 가는 초석을 다졌다. 하급무사 출신 사카모토가 강력한 두 웅번이던 사쓰마와 조슈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방책을 낸 끝에 막부에 맞선 두번의 동맹이 성립했다. 사카모토는 ‘선상팔책’이란 8가지 강령으로 막부 권력의 평화적 이양, 근대적 정부의 구성 등을 기초하기까지 했다.
전환기에 일본은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사분오열된 정치, 분단 현실은 우리가 아직 그 실패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사카모토 료마처럼 몸을 던져 부딪히고, 처절히 싸우고, 어느 시점엔 대의를 위해 결단하는 정치,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통합이나 협치가 모든 것의 해결책은 아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론 전선을 돌파하는 싸움 속에서 통합의 정치는 무르익는다. 통합과 연대의 중요한 덕목은 최선을 다하지만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말 원한다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끊임없이 방도를 찾아야 한다.
누가 됐든 정치 지도자라면, 나라의 힘을 한데 모으는 큰 정치, 통합의 정치가 이 혼돈의 시대에 국운을 개척할 필생의 방책이란 점을 국민과 지지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으며 어느 순간 세상을 바꾸었듯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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