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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청와대 참모는 영혼이 있어야 한다

등록 2017-12-18 18:20수정 2017-12-18 19:19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청와대 실장과 수석, 비서관, 행정관은 그냥 월급을 받기 위한 취직자리가 아니다. 선거에 뿌릴 명함에 써넣을 이력을 쌓는 자리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결연한 각오와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권위적인 정치 문화와 시스템이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대통령제를 떠받쳤다.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기가 셌다. 참모들은 대통령 앞에서 숨도 크게 못 쉬었다. 그런데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김용갑 민정수석은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의 국회의원 출마를 대통령 면전에서 반대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김종인 경제수석은 자신이 경제수석을 맡는 조건을 대통령에게 제시해 관철했다. 대통령한테 각서를 받았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박관용 비서실장은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를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고 건의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희상 정무수석은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야당을 직접 비난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고했다가 얼마 뒤 경질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는 대통령의 뜻에 끝까지 반대하다가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자 자신이 앞으로 나서서 대통령 대신 욕을 먹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참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정권이 극우로 치닫자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말이 쉬워서 직언이지 청와대 참모가 대통령에게 직언하려면 최소한 자리를 걸어야 한다. 청와대 참모의 첫 번째 필요조건은 직언할 수 있는 용기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그러나 권한을 100% 행사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 한 사람이 직접 ‘통치’하기에 대한민국은 너무 큰 나라다. 국회와 정당, 국무총리와 각 부 장관,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위임해야 한다. 청와대가 다 나서면 곤란하다.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의 부훈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어쩌면 청와대 비서실에 더 걸맞은 구호일 수 있다.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목표를 관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국정 전반의 총체적 관리와 대통령 의제 몇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대규모 재난이나 정치·경제적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자기 분야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고민하고 판단할 줄 아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청와대 참모의 두 번째 필요조건은 대통령을 앞서갈 수 있는 창의력이다.

용기와 창의력은 참모 개개인과 청와대 비서실 조직 전체에서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정무 참모들에게, 창의력은 정책 참모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필요할 것이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에는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이 많다. 전직 의원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당연하다. 강을 건너고 나면 배를 버려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하지만 새로운 참모들은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가 아니다. 직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청와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두 가지다. 첫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노출 빈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과 여야 의원들 사이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새겨야 할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사파 출신 86그룹이 문재인 대통령을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한다. 그런 말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거짓 선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모 자신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할 때 직언할 수 있는 용기와 대통령을 뛰어넘는 창의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청와대에서 물러나야 한다.

해가 바뀌면 2018년 6·13 지방선거 국면으로 넘어간다. 청와대 참모 중에 지방선거에 출마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간에는 광역 및 기초단체장 후보로 나설 청와대 참모들의 이름이 나돈다. 당사자의 뜻이 아니라 지역에서 흘리는 소문에 불과한 사례도 있다. 별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너무 늦지 않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청와대 실장과 수석, 비서관, 행정관은 그냥 월급을 받기 위한 취직자리가 아니다. 선거에 뿌릴 명함에 써넣을 이력을 쌓는 자리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결연한 각오와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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