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미국을 견제하는 중-러의 협력은 강화되고, 한반도 정세는 교착될 전망이다.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라는 트럼프의 북핵 정책은 결국 ‘북핵에 대한 봉쇄와 억지’로 바뀔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계속 힘든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2017년 마지막을 달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을 둘러싼 의혹을 실마리로 2018년의 세계를 점쳐보자. 임 실장의 이 방문으로 한국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둘러싼 이면계약 의혹이 불거졌다. 무기판매를 포함한 군사지원 등으로 추측된다. 이는 한국까지 말려들어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수니파 진영 대 이란 주도의 시아파 진영의 대결이라는 중동분쟁의 새로운 국면을 상징한다. 2017년 초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이란을 테러리즘과 중동분쟁의 진원지로 취급하며, 수니파 중심의 대중동 정책을 명확히 했다. 이란과의 국제핵협정 파기를 위협하는 한편, 사우디에는 1100억달러(123조원) 상당의 사상 최대 무기판매 계약을 맺었다. 패퇴하는 이슬람국가(IS)의 공백에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세력들 사이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예멘과 시리아 내전이 대표적이다. 사우디 뒤에는 미국이 있고, 이란 뒤에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같은 대열에 서서 아랍에미리트와 관계를 맺었다. 단기적으로는 중동에서 시아파 진영 및 이를 후원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확장이 예상된다. 이는 중동에서 분쟁 격화 등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재촉해, 올해부터 시작된 유가 반등세를 지속시킬 것으로 보인다. 유가는 2016년 초 배럴당 30달러에서 현재 60달러로 근접해 두 배나 올랐다. 미-중-러 세 나라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유가 상승에서 최대 수혜자는 러시아다. 2014년 이후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으로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으로 겪던 경제난에서 벗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해에 고질병이던 인플레이션이 소련 붕괴 이후 최저치인 3.5%에 그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반도 합병일인 3월18일 치러지는 대선을 통해 권력을 더욱 다지고,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장할 것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압박을 받는 중국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폄하로 촉발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양안동맹 균열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 국가들을 각개약진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접근시킬 것이다. 트럼프의 취임으로 예상됐던 미-러의 중국 견제는 무산됐고, 2018년은 중-러의 미국 견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고, 정세를 계속 교착시킬 것이다. 홍콩 및 러시아 선박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기름을 넘겨줬다는 사건과 관련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비난을 중국과 러시아가 일축한 것은 올해 한반도 문제에서 양국이 보여줄 입장에 대한 시사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를 밝힘으로써 한-미도 연합훈련의 연기로 화답해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은 단기적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무역문제를 둘러싼 미-중 관계 그리고 11월의 미국 중간선거가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중간선거를 맞는 트럼프 행정부는 지지층을 달래려고,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강철 및 알루미늄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에 보복 조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이 조처는 미-중 관계를 경색시켜 북핵 문제에 대한 양자의 협조 구도가 바뀔 것이다.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중간선거를 의식해 트럼프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미지수다. 중간선거에 유리하게 북핵 문제를 다루려 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한반도 긴장의 격화나 완화 양쪽 모두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중-러가 협력하면서 미국과의 대립이 격화된다면,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의 공간은 넓어진다.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라는 트럼프의 북핵 정책은 결국 ‘북핵에 대한 봉쇄와 억지’로 바뀔 것이라고 <스트랫포>도 전망한다. 2018년은 미국이 국익만을 더욱 챙기는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심화시키면서, 국제사회는 규율되지 않는 다극화 질서가 더 진행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미국 편에 전적으로 줄을 서라는 압력을 높일 것이고, 이를 놓고 한국은 또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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