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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북혐 프레임 / 김하수

등록 2018-01-21 17:10수정 2018-01-21 20:31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바야흐로 혐오사회라고들 한다. 자신의 어려움이 타인, 특히 특정 집단 탓이라고 믿고 지나치게 미워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여혐, 남혐 등 이성에 대한 지나친 혐오 발언도 넘쳐났다. 이 집단적인 혐오 감정은 특히 정치적으로 오용될 때 더욱 위험하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대표적이다.

우리도 최근까지 지역감정에 바탕을 둔 혐오 발언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진절머리 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혐오 발언이 얼마나 많은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곤 했는가.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또 다른 건강하지 못한 집단 혐오가 있다. 바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다. 대개는 남북 정세에 대한 분석이나 경험에 기초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선동된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만 해도 혹시 전쟁이 나지는 않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한 긴장 상태를 겨울올림픽을 지렛대 삼아 평화 분위기로 반전시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러 절차와 부차적인 진행 방식을 문제 삼아 사그라지던 북쪽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으로 살금살금 불붙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북혐 발언’이라 할 만하다. 차라리 북핵 문제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은 옳지 않다. 그러나 올림픽이 지향하는 정치적 메시지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메달을 많이 따거나 꼭 이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이 지향하는 ‘평화’와 ‘화합’에 동참하는 일이다. 남과 북의 협력은 바로 이 가치를 이루는 지름길이 아닌가. 그것을 위해 출전 시간을 조금 줄일 수도 있고 깃발을 중립화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끝난 후에 승패를 떠나 열심히 경기를 치른 선수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윤리적이고 건강한 올림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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