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연애편지

등록 2018-01-24 18:05수정 2018-01-24 19:40

전우용
역사학자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16세기에 안동 유생 이응태의 부인 ‘원이 어머니’가 한글로 써서 남편 무덤에 넣은 편지의 한 구절이다. 산 사람에게 보낸 것이라면 ‘연애편지’라고 해야 하겠지만, 죽은 사람에게 보낸 편지이니 뭐라고 해야 할까? 원이 어머니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도 저런 편지를 보냈을까? 옛날에는 부부 사이에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흔했을까? 배우자에 대한 감정을 ‘연애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혼은 연애의 종결인가 연속인가?

이성에게 끌리는 것이야 모든 동물의 본능이지만, 그것을 ‘사랑’이라는 감성으로 승화시켜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특정 상대에게 고정시키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짝이 되면 평생을 함께하는 동물종이 일부 있으나, 그것들이 ‘사랑’으로 묶였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은 동물적 본능에 결박된 원초적 감정이 아니라, 그것을 가꾸고 다듬어 이룩한 인간만의 감성이다.

사랑이 본능이라면 모든 사람이 사랑에 능할 테지만, 사실은 서툰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미혼 남녀 간의 사랑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역 밖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춘향전>도, 사랑이 싹트고 자라며 결실을 맺는 과정에 관한 서사는 뭉개져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미혼 남녀 간의 사랑과 연애에 관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1923년에 출간된 연애편지 모음집 <사랑의 불꽃>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젊은이들은 연애 콘텐츠를 보면서 내면의 사랑을 일깨웠고, 연애편지를 쓰고 읽으면서 사랑의 감성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사랑’은 글로는 쓸 수 있으나 말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단어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말과 동작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현대인은 ‘사랑’을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의 사랑 표현이 더 정교해지고 잦아진 것은 의심할 나위 없으나, 사랑이 더 깊어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