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1841~1931)은 <군중심리학>에서 대중을 움직여 여론을 좌우하는 ‘위세’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위세는 어떤 개인이나 작품이나 이념이 우리 마음에 행사하는 지배력이다. 이 지배력은 우리의 모든 비판 능력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영혼을 놀라움과 존경심으로 채운다. 위세는 모든 지배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르봉이 거명하는 여러 인물 중에서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위세의 대명사라 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나폴레옹의 위세는 경력의 초창기에 벌써 확연했다.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20대의 나폴레옹은 한참 나이 많은 장군들을 “첫 순간부터 어떤 말이나 몸짓이나 위협도 없이” 존재 자체로 정복했다. 방담 장군은 뒤에 이렇게 고백했다. “그 악마 같은 사람이 나에게 휘둘렀던 마력을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다.”
르봉이 주목하는 인물에는 수에즈운하를 건설한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마리 레셉스도 있다. 레셉스가 수에즈운하 사업을 추진할 때 반대 여론이 극심했다. “레셉스는 만장일치로 반대하는 세력을 설득하기 위해 단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됐다. 잠깐만 말해도 반대자들은 친구가 됐다.” 위세의 힘으로 수에즈운하 건설에 성공한 레셉스는 이어 지구 반대편으로 가 파나마운하 건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파나마운하’는 넘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었다. “산들은 저항했고, 잇따라 일어난 대참사는 그 영웅을 감싸고 있던 영광의 빛을 부숴버렸다.” 레셉스는 파산해 범죄자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가 정신착란 속에 죽었다. 온갖 비리 의혹에 휩싸인 17대 대통령 이명박의 경우는 어떨까. 얼마 전 3분짜리 입장문을 읽어가는 도중 여러 차례 기침을 해대던 모습은 한때 기세등등했던 전직 대통령의 위세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사라져가는 꼴을 보여주었다. 위세의 종말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