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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괴물을 괴물이게 하는 것 / 이은지

등록 2018-02-11 17:49수정 2018-02-12 08:48

이은지
문학평론가

짧지만 많은 것을 함의하고 있어 수시로 꺼내 읽고 곱씹게 되는 글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쓴 <코이너씨 이야기> 중 한 편이 나에게는 그러하다. 불법의 시대에 에게씨의 집에 불법의 대리인(이하 불법)이 쳐들어와 자신의 시중을 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에게씨는 이에 대답은 않고 집을 점거한 그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준다. 7년의 세월이 흘러 불법이 너무 많이 먹고 자고 명령만 하다가 뚱뚱해져 죽고 나서야, 에게씨는 그를 집 밖으로 끌어낸 뒤 대답한다. “아니, 싫소.”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가 주목한 것은 불법에게 ‘아니오’라고 말하기까지 에게씨가 감내해야 했을 세월의 무게였다. 그의 ‘아니오’에는 커피 한 잔을 거절하는 유의 ‘아니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고의 무게가 더해져 있다. 심지어 시중을 들어달라는 불법의 요구에 순종하는 행위들이 결과적으로는 불법을 죽이는 저항의 행위가 된 셈이니, 그의 ‘아니오’에는 묘하게 통쾌한 구석마저 있었다.

두 번째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그의 ‘아니오’가 실상은 얼마나 가볍고 연약한가 하는 것이었다. 에게씨가 불법을 천천히 죽이는 세월은 정확히 그만큼 불법을 먹이고 살리는 세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니오’를 외치기에 충분한 시점이 오기까지 불법을 방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법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그랬을 때 그의 ‘아니오’가 과연 순수한 ‘아니오’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세 번째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주목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코이너씨가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폭력의 시대에 코이너씨가 폭력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달아나길래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등 뒤에 폭력이 서 있었다. 무슨 얘길 했느냐는 폭력의 질문에 그는 ‘폭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대답한다. 그곳을 벗어난 뒤 제자들이 그를 질책하자 코이너씨는 자신이 폭력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로 에게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이너씨가 에게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게끔 두 시대를 연결해주는 것은 불법과 폭력보다도 그에 대한 코이너씨와 에게씨의 태도에 있다. 어쩌면 폭력은 폭력 자체보다도 폭력을 대하는 사람들의 비겁하고 위선적인 태도를 통해 그 위력을 더하고 명을 유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을 때 폭력의 실체는 오로지 폭력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일까? 나아가 폭력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은 성폭력이라는 괴물의 실체를 폭로하고 돌을 던지면서, 괴물의 실체가 오로지 괴물에만 있는 것인지는 따져 묻지 않는다. 코이너씨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은, 괴물을 괴물이게 하는 것은 괴물만은 아니라는 확신이다. 괴물이 있다면 괴물과 맞서 싸우되, 괴물을 괴물이게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도 함께 싸워야만 한다. 괴물을 직면했을 때는 상황을 모면하고 방관해놓고 괴물이 더는 괴물로서 힘을 못 쓰게 되어서야 괴물을 때리는 저열한 의식 말이다.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이 그런 의식구조를 들여다보고 개조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조타수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로지 괴물만을 때리는 광기에 몸을 내맡기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코이너씨와 에게씨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괴물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은 괴물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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