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몇달 앞둔 1984년 봄 미셸 푸코는 콜레주드프랑스 강의실 탁자 앞에 앉아 수강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몸이 아팠습니다. 정말 아팠습니다.” 에이즈가 철학자의 육체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푸코는 죽기 직전 두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성의 역사> 시리즈의 제2권 <쾌락의 활용>과 제3권 <자기 배려>였다. 이 두 권의 저서는 8년 전에 펴낸 <성의 역사> 제1권 <앎의 의지>와 한 시리즈로 묶였지만, 1권과 2·3권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할 만한 깊은 협곡이 파였다. 동성애자로서, 소수자를 배제하고 추방한 근대 이성의 억압질서를 폭로했던 푸코는 마지막 저서들에서 주체의 문제로 돌아와 자기를 돌보는 일에 몰두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70년대 말에 푸코는 이란 민중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에 열광했다. 푸코에게 이슬람 혁명은 서구 근대성을 돌파하는 새로운 힘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푸코가 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슬람근본주의 율법이 새로운 억압을 불러냈다. 여성들은 자유를 잃고 히잡에 갇혔다.
낙심한 푸코는 사회적 발언을 접고 고문서 속에 파묻혔다. 이 말기의 푸코가 미완성 상태로 둔 원고가 <성의 역사> 제4권 <육체의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34년 만에 출간됐다. 푸코는 저작 출간을 원하지 않았지만 푸코의 남성 동거인 다니엘 드페르가 원고를 넘겨 결국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이 책에서 푸코는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의 문헌을 탐사해 당시 기독교인들이 동성애를 단순히 금기로 보지 않고 공개적인 토론에 부쳤음을 밝혀냈다고 외신은 전한다. 푸코의 저작들이 일종의 복화술, 곧 옛 문헌들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이 책에서도 푸코식 자기 고백이 담겼으리라. 그 고백이 동성애를 새로운 십자군전쟁의 적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들리겠지만.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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