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논설위원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노동개혁을 칭찬들 하지만, 그의 또다른 진면목이 용기 있는 평화주의자였다는 점은 잘 부각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 당시 부시의 ‘푸들’ 블레어 영국 총리가 전쟁에 앞장선 반면, 슈뢰더는 야당·언론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전쟁에 반대했다.
당시 언론은 “독일이 이렇게 외톨이였던 적이 없다”며 ‘동맹과의 불화’를 극도로 염려했지만, 슈뢰더는 “타협하느니 총리를 물러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다. 이라크 전쟁은 조작에 기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부시와 블레어는 큰 타격을 입었다.
흔히 평화는 비겁하고 전쟁은 용감하다고 하는데, 반대인 경우도 많다.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중동 평화를 닦은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사다트는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평화를 호소했고, 이듬해 캠프데이비드협정을 타결지었다. 1993년 라빈은 팔레스타인 지도자와 처음으로 만나 오슬로협정을 맺었다. 사다트와 라빈은 모두 극단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은 마치 한반도에서 전쟁은 힘들지만 용감하고, 평화는 비겁하고 쉬운 것으로 오도한다. 그간 역사는 한반도에서 평화야말로 전쟁보다 힘들고 지난하다는 걸 보여준다. 남북은 6·25를 필두로 무수한 전쟁과 대결 역사를 썼을 뿐, 평화와 공존은 짧고 귀했다.
제대로 된 평화 시기는 디제이와 노무현 시대, 그것도 두번의 남북정상회담을 즈음한 때에 불과하다. 노태우 시기에 의미 있는 평화가 있었지만 명색이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는 어이없는 반북노선으로 후퇴했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퇴행까지 합하면 제대로 된 평화 시기가 얼마나 됐는지 한탄스러울 정도다. 북한 핵·미사일은 70년 이어진 대결의 산물이지, 결코 디제이·노무현 10년 화해정책의 산물이 아니다.
요즘 보수 인사들 말을 들으면 한-미 동맹이 깨져서 나라가 곧 결딴날 것 같다. 보수의 레퍼토리는 ‘기승전 한-미 동맹’이다. 한-미 동맹 타령은 노무현 집권 초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집권하자 반미로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었다. 하지만 동맹은 깨지지 않았다. 노무현이 부시와 얼굴 붉히는 일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수습했다. 부시 2기 때는 2·13 합의로 북핵의 포괄적 해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한-미 동맹은 견고한 동맹이다. 이승만 이후 숱한 곡절이 있었지만 동맹은 굳건하다. 한-미 동맹은 오랜 세월 서로의 이익에 기반해 구축된 안보·경제 공동체다. 쉽사리 해체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처칠이 2차대전 당시 대독 항전을 분명히 함으로써 세계를 구했다고 칭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처칠처럼 전쟁을 두려워 말라는 거다. 그런데 잘 생각해봐야 한다. 2차대전 당시 평화주의가 대세였던 영국에서 처칠의 용기가 전쟁이었다면, 지금 전쟁 먹구름 가득한 한반도에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평화의 길을 굳건히, 용기 있게 가야 한다. 비겁한 평화가 아니라 과감하고 용기 있는 평화라야 한다. 북한에 할 말은 하고 나무랄 건 나무라야 한다. 평화·공존이 북한 말을 다 들어준다는 건 아니다.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도 바뀌는 게 상식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대북정책 전환을 승인받았다. 70년 지속된 대결에 매몰돼 평화와 공존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그동안 해오던 익숙하고 쉬운 대결의 길을 답습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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