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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문학이란 무엇인가 / 이은지

등록 2018-03-11 17:51수정 2018-03-11 19:08

이은지
문학평론가

최근 서점가 문학코너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책을 꼽으라면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인간>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식 등단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문학교육 한번 받지 않은 그가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머릿속으로 떠올린 이야기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하나둘 올리기 시작한 것이 무려 300여 편에 이른단다. 이야기에 호응하여 댓글이 달리는 것이 좋아서, 맞춤법부터 구성에 이르기까지 댓글의 조언을 받아 고쳐 가며 지어냈다는 그의 이야기들은 짧고 투박하지만 독자에게 호소하는 의미심장한 구석을 품고 있다. 그의 등장은 우리 시대에 있어서, 아니 시대 불문하고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되새겨보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위해 문학을 생산하는 작가란 무엇인가를 점검해보자. 프로이트는 에세이 ‘작가와 몽상’에서 작가란 밤에 꿈이 하는 작업을 낮에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꿈이 하는 작업이란 낮 동안에 겪었던 경험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은유하거나 환유하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놀이는 오로지 꿈의 주체인 자아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진다. 반면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낮에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닌 독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하는 사람이다.

문자 그대로 낮 동안 일하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린 몽상을 독자들과 나눈 김동식은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작가로서 쓴 글은 분명 문학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낮에 꿈을 꾸는 자, 즉 몽상가로서의 작가가 벌인 놀이는 어떻게 그와 전혀 무관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일까? 밤에 꾸는 꿈이 꿈의 주체가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무의식중에 벌어지는 놀이라면, 낮에 꾸는 꿈은 작가의 깨어 있는 의식이 활동하는 무대이자 다른 이들의 의식 또한 공존하는 ‘현실’을 소재로 벌어지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회색인간>에 실린 작품들은 유사한 구성을 반복적으로 변주하고 있다. 온 인류가 하루아침에 좀비가 된다거나 저승의 일방적인 인구정책에 이승 전체가 연루되는 등, 각자의 계급조건이나 이해관계를 초월한 예외상태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부과된다. 이 예외상태에 처한 사람들은 이전까지 당연시하며 살아왔던 삶의 조건들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연시해온 삶의 조건들에 근거해 사태에 대응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 올리던 것이었던 만큼 그의 작품들은 장르물 특유의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소재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버무려 만들어졌고, 공포 게시판에 올라올 법한 성격의 게시물을 기대하고 접속한 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재미를 충족시키는 소재들이 한결같이 가리키는 지점, 즉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독자들은 물론이고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던 작가로 하여금 현실을 달리 상상해볼 공통의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인 가치를 머금고 있다.

이는 예술에 고유한 가치로서 여러 사상가들이 역설해온 것이며, 문학을 비롯하여 낮에 꾸는 꿈인 예술을 우리가 나누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들은 분명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의 삶의 이력 전체를 통해 구해진 해답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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