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예술단이 서로 방문 공연을 하며 새로운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그동안 빙하기가 꽤 길었음에도 다행히 서투른 실수나 오해 같은 것 없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 팽팽하던 긴장을 풀어내는 데는 역시 운동경기와 예술공연을 당할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이번 남북 접촉에 대한 보도에서는 자주 ‘파격’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일상화된 격식과 관행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사전을 보면 ‘파격 대우’나 ‘파격 인사’에서처럼 타성을 극복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보이기도 하고 ‘파격 의상’ ‘파격 노출’처럼 지나치게 튄다는 의미도 보여준다. 그러나 답답하기만 하던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좀 튀더라도 어느 정도 파격은 필요하다고 본다.
한쪽이 파격을 행하는 것은 사실은 상대방도 좀 신선한 모습을 보여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말고,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단계에 함께 들어서자는 제안이 맥락에 담겨 있기도 할 것이다. 상대가 파격적 행동을 하면 사실 우리도 파격을 보여줘야 할 부담이 생긴다. 그래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다시는 지난날의 헛된 수순을 되풀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북쪽의 고위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털어놓거나 최고 지도자의 부인이 통치자를 ‘남편’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오로지 북쪽의 변화만 강조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마음에는 늘 남쪽은 ‘정상’이요 북쪽의 일은 ‘정상’이 아니라는 선입관이 강하다. 냉정히 본다면 비정상적인 분단 상황에서 제대로 정상적인 것이 남과 북 어느 구석에서나 있을 수 있었겠는가? 분단이 빚은 답답한 관행을 벗어나 끊임없이 파격을 연출하면서 서로 함께 상식의 사회로 들어설 세기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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