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논설위원
그날, 오전 7시36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본관 앞에 섰다.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몸을 사리거나 금기를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2007년 10월2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출발에 앞선 대국민 인사로, ‘노무현과 김정일의 아침’은 시작됐다. 평양 공동취재단으로 새벽녘 경복궁에 집결한 나는 들떴다.
다시 ‘그날’이 왔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침이 시작된다. 그날 이후 11년을 돌고 돌아, 휴전상태인 한국전쟁을 종결할 기회가 다시 왔다. 동아시아 냉전질서를 규정한 1952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끝내고, 새 질서를 구축할 기회다.
그날, 오전 9시3분. 노 대통령은 노란색 군사분계선 앞에 섰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 고통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으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성큼 넘어섰다.
오늘, 오전 9시30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금단의 선을 건너 남쪽으로 온다. 그날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그를 맞는다. 정전협정을 체결한 1953년에 싹을 틔운 소나무를 군사분계선 위에 함께 심는다.
오늘, 모든 순간이 역사다. 그 순간들이 모여 한반도 평화를 만든다. 문 대통령도 ‘몸을 사리거나 금기를 두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이번엔 ‘크게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노 대통령의 바람처럼, 마침내 금단의 선을 지우고, 남북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섣부른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2007년 그날도, 험난했다.
평양 방문 둘째 날인 10월3일 오전.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에선 온갖 변수가 돌출했다. 남북이 사전 논의한 합의조차 쉽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이렇게 하면 점심 먹고 짐 싸서 (서울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할 만큼 팽팽했다. 오후 회담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 결과물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른바 ‘10·4 선언’이다. 8개 항의 선언문에는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 정상회담 수시 개최,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파격적 합의가 담겼다.
11년이 흐른 지금, 어느 것도 현실화하지 못했다. 임기를 넉달여 남겨둔 노 대통령은 10·4 선언에 대못을 박고, 미국이 참여한 종전선언으로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노심초사했다. 보수세력의 반격은 드셌다. 10·4 선언을 ‘엔엘엘(NLL) 포기 선언’으로 왜곡했다.
오늘,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다만, 11년 전 그날과 다른 ‘희망의 싹’을 우리는 봤다. 오늘, 두 정상은 판문점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남북관계의 개선을 이뤄낼 묘수를 찾아야 한다. 다음달 북-미 정상이 비핵화 방안을 합의하고, 남-북-미가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평양과 워싱턴에 북-미가 대사관을 설치해 정상국가의 관계로 공존할 노둣돌을 놔야 한다.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디엠제트(DMZ) 비무장지대화 등 남북 현안도 통 크게 합의해야 한다.
힘겹게 왔다. 갈 길도 험난하다. 그래서 더욱, 주저할 수 없다. 더 담대하게,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날처럼, 보수세력은 물어뜯을 것이다.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합의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기업인은 개성공단으로 돌아가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언론사는 앞다퉈 평양 특파원을 파견하는 그런 날, 오늘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첫날이길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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