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복지관에 사회봉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작은 휴게실에 들어갔다. 휴게실 입구 쪽 의자에 중년 여성이 혼자 앉아 있었다. 봉사자인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일을 했다. 어르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젊은 얼굴빛이다. 내가 옆에 앉아도 미동 없이 구부정하게 어깨와 다리를 모으고 앉아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아아, 어어어’라고 말하는 소리였다. 복지관 직원이 다가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표에 적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 없는 단어라는 듯, 계속 중얼거렸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직원이 내게 말했다. 이분은 노래를 좋아하니까 ‘고향의 봄'을 불러달라고. 머뭇거리다가 그녀 옆에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가사 없이 흥얼거렸다. 그녀는 계속 중얼거렸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멜로디와 가사가 있는 노래였다. 어떤 노래의 멜로디인지 알 수 없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불규칙적인 선율이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이다. 그녀의 머리에서 어떤 음악이 재생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얼마나 좋은 음악이길래 계속 흥얼거리는 거지. 그녀가 듣는 음악을 상상하면서 옆에 앉은 나도 목소리가 나오는 대로, 생각이 지나가는 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음을 따라 뱉었다. 그녀가 음을 내뱉는 내게 고개를 돌려 ‘아아아'라고 말하며 웃는다. “아가씨!”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미숫가루 저어줘.”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여자는 벙어리인가봐.” “아직 젊어 보이는데 불쌍해서 어떡해.” 사람들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나이는 몇 살이야?” 옆에 있던 중년의 봉사자가 내게 질문했다. “스물아홉이요.” “근데 왜 이렇게 어려 보여? 결혼은?” “안 했어요.” “결혼할 예정인가?” “결혼할 생각은 없어요.” “아이는 낳아야지.” “아이 낳을 생각 없어요.” 뒤에서 대화를 듣던 다른 직원이 말했다. “결혼을 안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래서 문제야.” 익숙한 말들을 등지고 뒤를 돌아봤다. 작은 휴게실 한쪽 모서리에는 55인치 텔레비전이 천장에 비스듬히 매달려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스크린에서 국가의 정상들이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깨끗한 옷과 머리카락들, 너그러운 미소와 똑똑한 말들. 평화와 화해, 정상과 정상화, 번영, 안정이라고 써 있는 글자들이 보인다. 스크린에서 본 적 없는 그녀의 말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귀가 어두워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야 하는 어르신들은 내가 서빙한 미숫가루와 스크린을 번갈아 쳐다봤다. 다시 중얼거리는 그녀의 옆에 가 앉았다. 피곤한 다리를 올리고 그녀처럼 웅크려 앉아 바닥을 바라봤다. 반쯤 눈을 감고 한참을 노래 아니고 말 아닌 것들을 뱉었다. 그녀는 옆에서 흥얼거리는 나를 이따금 쳐다보면서 미소 지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가씨, 여자,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지 않는 요즘 젊은이로 불리는 나와 불쌍한, 벙어리, 아직 젊은, 여자로 불리는 그녀는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 걸까. 교정되어야 하는 건 그녀일까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일까. 말을 배워야 하는 건 누구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명징한 말들 속에서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내는 으르렁거림, 말이 되지 않으려는 웅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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