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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혐오 없는 선거 만들기

등록 2018-05-17 18:13수정 2018-05-17 19:25

‘혐오’ 전략이 통하는 선거에서 사라지는 것은 ‘인권’과 ‘평등’이다. 그런 선거는 국민들을 쪼개어서 서로를 함께 살아갈 ‘이웃’이 아니라 서둘러 제거해야 할 ‘폭탄’으로 보게 한다. 벌써부터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나 이인제 충남도지사 후보 등이 동성애 반대를 천명하고 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몇년간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 중의 하나는 ‘혐오’다. 혐오를 혐오하고, 혐오를 혐오하는 것을 다시 혐오한다. 이제는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보장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어사전적 의미로 혐오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볼 때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개인의 자유가 맞지만, 자신의 혐오를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게시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발언하는 것은 자유일 수 없다.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낸다는 것은 ‘나와 함께 저들을 싫어하고 미워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혐오를 합리화하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왜곡된 가짜 뉴스나 과장된 정보가 유포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우간다가 에이즈를 극복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작년부터 꾸준히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다. 우간다는 1980년대만 해도 전 국민의 60%가 에이즈 감염인일 정도였는데 동성애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을 제정한 뒤에 에이즈 감염률이 낮아져 2017년에는 6%가 되었다는 내용인데 한 블로거가 ‘자작’한 게시물이다. 당연히 사실관계는 전혀 맞지 않는다. 우간다의 1990년대 초 에이즈 유병률은 15~20% 정도였고, 2017년이 아니라 이미 1999년에 6%대로 떨어졌다.

1990년대에 명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와 안전한 성행위 권장, 콘돔 배포 등의 적극적 예방 정책을 펼친 덕이었다. 오히려 2014년에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처벌하는 법안을 제정한 뒤로 우간다의 에이즈 유병률은 다시 오르고 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가짜 정보가 담긴 게시물 아래엔 우간다를 본받아 한국도 동성애를 처벌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또, 이런 왜곡된 내용의 강연이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유튜브를 통해 다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있다.

2017년 대통령선거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표현을 쓰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냐고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한국은 1985년 첫 HIV 감염인이 나오고 30년이 지나는 동안 총 감염인 수는 이제 1만명이 넘었고, 에이즈는 희귀질환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창궐’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지만 홍준표 후보는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그 단어 자체가 공포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국은 결핵 발생률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1위다. 최근 감소 추세라고 하지만 2017년 신규 감염인 수가 2만8천명에 달하고, 사망자 수는 2천명이 넘는다. 그렇다고 결핵을 두고 창궐한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결핵의 원인은 결핵균이지 호흡을 한 것 자체를 잘못이라 할 수 없듯이, 에이즈의 원인을 동성애라고 할 수 없다고 받아쳐야 할 대목에서 그만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혐오’ 전략이 통하는 선거에서 사라지는 것은 바로 ‘인권’과 ‘평등’이다. 그런 선거는 국민들을 쪼개어서 서로를 함께 살아갈 ‘이웃’이 아니라 서둘러 제거해야 할 ‘폭탄’으로 보게 한다. 더군다나 정치인이 드러내는 혐오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마치 ‘행동 강령’처럼 전달되어 선거가 끝난 후에도 일상 속에서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온다. 그래서 독일은 이런 폐해 때문에 2017년에 ‘가짜 뉴스와 혐오 표현 방지법’을 제정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동성애 반대 단체에서 자치단체장, 교육감 후보들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후보의 정책을 묻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노골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라’고 답을 정해놓았다. 혐오가 또다시 선거의 쟁점이 되면, 지난 대통령선거 토론회의 한 장면이 반복될 수 있다. 벌써부터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나 이인제 충남도지사 후보 등이 동성애 반대를 천명하고 있다.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선거 후에 도움이 될 득표율을 조금이나마 높이려는 심산일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항해 5월14일, 전국의 풀뿌리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이 마침내 ‘혐오 없는 선거 만들기’를 선언했다. 유권자들은 혐오를 활용해 선거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후보들을 경계하고, 후보들은 유권자로서 표를 주겠다는 혐오 세력의 유혹을 거부하자고 한국 사회에 제안했다. 정말 우리가 촛불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밝혔다고 자부한다면 이젠 선거에서 혐오를 떼어내자. “혐오와 민주주의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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