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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돌이킬 수 없는 합의는 가능할까 / 이용인

등록 2018-05-17 18:14수정 2018-05-17 19:10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다음달 12일 북한과 미국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쪽의 물밑 기 싸움과 수 싸움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 형식으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다.

무시해선 안 되지만 크게 놀랄 일도 아닌 듯하다. 그동안 순항했던 것이 되레 이상했다. 아마도 북-미 정상회담 무산 얘기가 앞으로도 몇 차례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장소와 시기를 정하는 사전 협상이 일종의 몸풀기였다면, 비핵화 및 상응 조처를 둘러싼 의제 협상은 본게임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의제 논의로 돌입하면 북한 입장에선 체제 안전보장과 제재 완화·해제와 같은 큰 패를 놓고 생존을 건 승부를 벌여야 한다. 이제 북한이 ‘얌전한 고양이’로 있었으면 하는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북한이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로 양보한 것만 해도 파격이었다.

북한의 ‘언론 플레이’가 북한 특유의 전술만도 아니다. 미국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나 미-중 정상회담 등에 앞서 언론 플레이를 통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략을 흔히 구사했다. 또한 동맹인 한-미 간 협상에서도 일방적인 양보는 없다. 한-미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회담 직전까지 실무자들이 복도에 앉아 마지막까지 담판을 벌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싱가포르 회담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남·북·미·중 4국 정상 지도자들의 정치적 추동력이 이전과는 다르다. 밀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언이든 뭐든 어떤 형식으로도 결과는 나올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뒤 사찰이나 검증 같은 이행 과정에서 좌초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부의 걱정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일부의 우려는 ‘반트럼프 및 반북 정서’와 결합돼 있어 딴죽걸기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행에 수반되는 기술적인 복잡함보다도 미국 내 정치 지형에 따른 위험 요인이 더 커 보인다. 오는 11월 미국 상·하원 중간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 추진의 큰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기회이지만, 정상회담 결과가 지나치게 정치 쟁점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선 우려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성과 흠집 내기’ 공세에 맞서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국내 논리에만 치우친 해석으로 방어에 나설 경우, 합의문 취지는 훼손되고 북한이 반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면 ‘역제네바합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북-미가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를 맺었지만, 다음달인 11월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의 반대로 예산 확보가 어려워져 대북 중유 공급이 계속 지연됐다. 더글러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 부회장은 몇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미 의회의 법률 제정 없이 어떻게 중유를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조항이 제네바합의에는 없었다”며 “옥에 티가 전체를 망쳤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별 정치체제와 선거 주기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행의 신뢰성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선거를 통한 미국의 정권교체 방식에 당황했던 중국은 수십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적당한 타협을 하는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다고 워싱턴의 한 중국 전문가는 귀띔했다. 한국에서도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과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계속 연기됐고, 2007년 북한과의 ‘10·4 선언’도 무용지물이 됐다.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런데 선거 민주주의 체제에서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상응 조처 약속은 가능할까. 어쩌면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으로 눈 돌리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화두만 던져본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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