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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이른바 보수가 무너진 세 가지 이유

등록 2018-06-04 17:19수정 2018-06-05 10:05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이른바 보수가 북-미 합의를 거부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정체성은 ‘민족 보수’가 아니라 ‘친미 보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보수를 표방한 기득권 세력, 즉 가짜 보수의 민얼굴인지도 모른다.

자유한국당 인터넷 누리집에 들어가면 곧바로 ‘여론조사 왜곡 충격 실상’이라는 영상이 뜬다. <엠비시> 경남 에이아르에스 여론조사표에 ‘대선 때 누구를 찍었나’라는 질문이 있는데, 응답자 800명 가운데 422명(52.7%)이 문재인을, 185명(23%)이 홍준표를 찍었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실제 경남도 득표율은 홍준표 37.24%, 문재인 36.73%였다. 영상은 “댓글 여론조작뿐 아니라 여론조사 수치 조작까지! 진실은 투표로 가려집니다”라는 말로 끝난다.

자유한국당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조작으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는 성·연령·지역처럼 객관적 요소가 아니다. 응답자의 답변이다. 보정하기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여론조사에서도 박근혜를 찍었다는 사람들의 비율이 실제보다 훨씬 높았다.

자유한국당은 조작론을 외칠 것이 아니라 홍준표를 찍은 사람들이 왜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은 왜 홍준표를 찍어놓고 문재인을 찍었다고 허위로 대답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실제보다 높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잘하는 분야는 외교·안보뿐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잘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경선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조짐이 이상하다.

8월 전당대회 대표 출마 뜻을 이미 밝힌 사람들과 출마를 검토 중인 사람들을 합치면 10명이 훨씬 넘는다.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며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대통령과 가깝다는 사람들은 벌써 ‘자기 장사’를 하고 있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그런데도 지지도가 높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하지 않다. 야당 때문이다. 정치는 때때로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덜 못하느냐’로 경쟁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못마땅한 사람들도 좀처럼 홍준표 대표와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대체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비겁하다. 자신들이 세운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아무도 할복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책임을 통감하는 의미로든, 정치보복에 항의하는 의미로든 몇 사람은 정치를 그만두리라고 기대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둘째, 오만하다. 촛불은 민심의 분노였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유달리 높은 지지도가 증거다. 야당은 고개를 숙였어야 한다. 최소한 1년 동안은 자숙했어야 한다. 반대로 고개를 들었다. 사사건건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다. 민심의 분노를 부추겼다.

셋째, 무지하다. 이번 북-미 협상은 지각변동이다. <조선일보> 주필이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라는 칼럼을 썼다. 뒤늦게 강력한 지진파를 감지한 것이다. 그런데 홍준표 대표는 2006년 3월 서울시장 경선 때의 악연을 거론했다. 자신을 궁지로 몰기 위해 칼럼을 썼다는 얘긴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 신문에 ‘미국, 때론 우리를 배신했다’는 칼럼이 등장했다. 홍준표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외교도 장사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호언장담하던 북핵 폐기는 간데없고 한국의 친북 좌파 정권이 원하는 대로 한국에서 손을 떼겠다는 신호”라고 했다. 미국을 들이받기 시작한 것이다. 좌충우돌이다.

이른바 보수가 북-미 합의를 거부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그들의 정체성은 ‘민족 보수’가 아니라 ‘친미 보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보수를 표방한 기득권 세력, 즉 가짜 보수의 민얼굴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진짜 보수정당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유한국당 강령은 “국가 안보, 자유와 책임, 공동체 정신, 국민 통합,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등 신(新)보수의 가치와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간다”고 되어 있다. 자유한국당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홍준표 대표도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갑자기 지방선거 유세를 중단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뒤에 숨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참회하지 않으면 심판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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