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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찬수 칼럼] ‘파격적 개각’을 기대한다

등록 2018-07-11 18:04수정 2018-07-12 10:20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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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정권’의 관건은 결국 ‘내각과 청와대가 조화롭게 일을 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현실적 제약보다 신경 써야 할 건, 부처 장관들이 이해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어젠다를 힘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과 공무원들에게 불어넣는 일이다. 곧 있을 개각은 그런 소중한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번 쓴 사람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거로 유명하다. 부산 변호사사무실의 사무장이 수십년간 일하던 그 자리에서 정년퇴임을 했다거나, 국회의원 시절 여러 명의 비서관을 한 사람도 바꾼 적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현 청와대 연설비서관인 신동호씨가 동료들에게 했다는 얘기는, 문 대통령이 왜 사람을 바꾸지 않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사례다.

신 비서관은 2015년 무렵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 비서실의 부실장을 맡으며 연설문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가 쓴 연설문을 문 대표에게 보여주면 새빨갛게 고친 원고가 되돌아왔다. 날이 갈수록 빨갛게 고친 부분은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그가 쓴 원고에선 빨간 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문재인 스타일에 꼭 맞는 글을 쓰게 됐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년여쯤 지난 뒤 신 비서관은 그동안 모아 놓은 원고를 꺼내 다시 죽 읽어봤다. 그랬더니 자신의 글 스타일이 처음이나 그때나 바뀐 게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가 문재인 대표에게 맞춘 거라기 보다는, 문 대표가 오랜 시간 서로가 맞을 때까지 인내해준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주변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맞을 때까지 기다리니까 굳이 사람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보통사람들에게 이건 커다란 장점이다. 하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에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회자된 건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다. ‘식견 부족’이란 비판에 시달렸던 김 대통령은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인사’를 매우 중요시했다. 좋은 사람을 잘 썼는지는 의문이지만, 정치적으로 인사를 잘 활용한 건 사실이다. 한발 앞선 ‘깜짝 인사’와 ‘발탁 인사’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전달했다. 국민과의 접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과 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인사’다. 인사를 통해서 국민은 대통령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어디에 역점을 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한꺼번에 셋씩이나 교체했다.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사람을 잘 바꾸지 않는 평소의 ‘문재인’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여전히 높고, 더구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직후라 더욱 그랬다. 청와대를 떠난 수석비서관들은 전날에야 교체 사실을 통보받았다는 얘기가 여권에선 돌았다. 청와대 개편을 경제 부진에 대한 문책이라 평하든, 또는 당·정·청 간 불협화음 해소를 위한 것이라 해석하든,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인사로 돌파구를 찾는 건 일반적인 방식이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가장 유리한 시기에 인사 쇄신을 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국정을 더 단단히 조이겠다는 신호로 읽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성공한 정권’의 관건은 결국 ‘내각과 청와대가 조화롭게 일을 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정책기획의 고삐는 청와대가 틀어쥐더라도, 유연한 실행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할 책임은 각 부처 장관들에게 있다. 불행히도 지금 많은 장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에 가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이 잘 알지 못한다. 예상 밖의 청와대 개편처럼, 내각에도 분명하게 새바람을 불어넣을 때다.

정치권에선 공석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해 3~4개 부처 장관의 개각을 점친다. 이 정도론 뚜렷한 메시지를 주기 어렵다. 좀 더 파격적인 개각을 기대한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작성과 그 이후 과정을 돌아보면, 초록이 동색인 군의 폐쇄성을 깨기 위해 첫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기용하는 것도 이젠 시기상조가 아닐 것이다. 정부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장관들이 전면에 서서 성과로 평가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문에 개각 폭을 넓히기 어렵다는 설명은 물론 현실적이다. 그러나 야당이 다수인 인사청문회가 걱정이라면 요즘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개혁입법연대’를 좀 더 구체화해서 뛰어넘을 수도 있다. 현실적 제약보다 신경 써야 할 건, 부처 장관들이 이해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 어젠다를 힘있게 추진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과 공무원들에게 불어넣는 일이다. 곧 있을 개각은 그런 소중한 기회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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