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논설위원
내 주변 무주택자들은 요즘 속된 말로 곡소리 난다고 한다. 아내의 타박에 변명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김현미 장관은 믿어보자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집값 꼭 잡힐 테니 전세로 살자며? 작년에 빚 조금 내서 집 샀으면 이런 꼴은 안 당하지.” 대체로 이런 얘기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8·2 대책’ 시행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서울의 웬만한 가정에선 평화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집값이 폭등했다. 정부는 최근 투기지역 추가지정 등이 담긴 ‘8·27 대책’, 전세자금 대출 규제 등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도 집값을 못 잡을 것”이라는 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30일 현재 네이버 부동산 ‘이슈 앤 폴’의 향후 집값 전망 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더 오를 것이라고 답했다.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답변은 17%에 그쳤다. 정부의 무능과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배신감을 토로하는 댓글도 무수히 달린다.
지난 8·27 대책 발표 때 국토교통부가 낸 자료엔 이런 진단이 나온다. ‘최근 서울 등의 국지적 과열현상은 수도권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의 해당 지역 유입, 개발계획 발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임.’ 무주택자들이 보기엔 너무 한가하다.
최근 집값이 폭등한 서울 여의도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며칠 전 만난 더불어민주당 경제통 의원은 솔직했다.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냥 집을 사라. 몇천만원 떨어질 때 기다리다 아예 ‘루저’가 될 수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투기를 막겠다는 의지는 충만하지만 자신들의 정책이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무지하다고 했다.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없고, 관련 정책을 책임질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정부는 ‘그래도 믿어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민심은 그런 선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지난 1년 동안 시장은, 서울 집값은 정부 약속과 반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지역 간 부동산 양극화도 심화했다.
서울 집중, 소득과 자산 불평등 심화, 유동성 과잉, 과거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부동산 시장에 꼭 맞는 정책을 내놓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정부에 변명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스스로 초래했기 때문이다. 보유세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보유세 강화를 수없이 공언했지만 정작 지난달 6일 발표된 개편안은 다주택자들조차 코웃음 칠 미약한 수준이었다. 거래 절벽, 세금 폭탄론 등 보수의 공세와 조세 저항이 두려웠을 것이다.
마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0일 취임 뒤 첫 당정청 회의에서 정부에 ‘3주택 이상이나 초고가주택에 대한 종부세 중과’를 제안했다. 세 채씩 집을 가진 사람은 분명 투기적 요인이 강하다. 아무리 주택보급률을 높여도 집 가진 자가 또 갖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달라질 게 없다. 한 채에 23억원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에게 상응하는 세금을 물리는 건 국가의 책무다. 이런 요구는 끊임없이 지속됐는데, 정부가 미온적이었을 뿐이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집값 폭등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누군가 사과하는 모습은 보여주는 게 정상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수현 사회수석,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중 누구 책임이 제일 큰지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정부 정책을 믿고 집 팔아서 전세 사는 사람, 집 구매를 미룬 사람, 자고 나면 ‘억 억’ 하는 집값에도 분노를 억누르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성의 표시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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