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우리는 보통 누구든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그렇다. 명예 훼손이나 거짓말할 자유는 빼고 말이다. 더군다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그 분야에서 양심적으로 할 말은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일단은 옳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무리 전문적으로 옳다는 신념이 있더라도, 그 말이 남에게 큰 상처가 된다면, 또 약자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면 어쩔 것인가? 또 갈등을 극복하려 한 말이지만 갈등을 증폭할 요인이 섞여 있다면 어쩔 것인가? 세상이 특정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단선적이지만은 않다. 매우 복합적이고 포괄적이다. 1980년대부터 통일 이후까지 독일의 연방대통령직을 맡았던 바이츠제커는 매우 품위 있는 연설로 유명했다. 당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인들에게 지나친 공격적 행위를 일삼자 독일의 지식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각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그 말을 삼가야 할 사람들이 있는 법”이라는 유명한 연설로 분위기를 잠재웠다. 적어도 독일인들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절대로 함부로 비판할 자유는 없다는 것, 그만큼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가 무겁기 한량없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그 이후 독일은 조용해졌고 독일 정치는 국제적 갈등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맥락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의 경제정책 책임자의 상식적인 발언이 안타깝게 논쟁에 휘말렸다. “모두가 강남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갈등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무리 공공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소모적인 갈등은 피하도록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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