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제작된 광여도에서 본 전주읍성. 조선시대 전라도를 관할하는 전라감영이 있던 곳이다. 블로거 ‘팬저의 국방여행’ 제공
전라도는 고려 현종 9년, 1018년 만들어진 행정구역이다.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따 처음엔 ‘전라주도’라 했다. 경상도는 1106년, 충청도는 1172년에 만들어졌다. 광역도 중 맨 먼저 만들어진 전라도는 올해로 1000년을 맞았다.
전라도는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위한 대규모 수리시설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330년 전북 김제의 벽골제가 축조됐다고 나온다. 조선 초 벽골제와 정읍의 눌제를 대대적으로 수축했다. 드넓은 땅을 농토로 되살리는 대공사였다. 전라도의 옥토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땀 흘려 개척한 것이란 얘기다.(<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정남구)
나라의 곡창인 전라도는 수탈의 땅이자 저항의 땅이었다. ‘코 없는 자 누구의 자식인고/ 홀로 산모퉁이서 얼굴 가리고 우네…’ 허균이 <동정록>에 적은 ‘코 없는 사람’이란 시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 고을도 남김없이 전라도를 점령하라”고 명하면서 코를 베어오게 했다. 그 쌓인 높이가 산허리와 같았다고 한다.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른 것은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몰아내고자 함이다.” 1894년 봉기한 전봉준의 격문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을 효수한 뒤 전주를 거쳐 서울로 향한다는 계획이었다. 전봉준은 교수형 직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달라”고 외쳤다.
“후천에는 약한 자가 도움을 얻으며, 천한 자가 높으며,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을 것이오,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니라.” 1871년 고부에서 태어난 강증산은 ‘후천개벽’을 설파했다. 증산은 묵은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 세상을 여는 길을 제시했다. 그런 세상을 보려면 ‘마음 고치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소설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아픔을 그렸다. 광주항쟁은 현대사에서도 계속된 전라도의 수난을 상징한다. 18일 전주의 전라 감영 일대에선 전라도 1000년 행사가 열린다. 아픔과 영광의 천년 세월을 딛고 보다 성숙한 새 천년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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