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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신동빈 회장, ‘을들의 절규’ 안 들리나 / 안재승

등록 2018-10-30 18:25수정 2018-11-29 14:26

안재승

논설위원

롯데그룹한테 ‘갑질’을 당했다는 협력업체 대표들이 지난 2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났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간담회를 주선했다. 정의당이 지난 5월 ‘갑질신고센터’를 열었는데 롯데 관련이 절반을 넘어 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구체적인 사정을 들어보라는 취지에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간담회에서 ‘을들의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과도한 수수료, 불공정 계약, 판촉·광고비 떠넘기기, 부당 반품, 계약 만료 전 매장 강제 철수, 신규 점포에 강제 입점, 공사 대금 미지급 등등. 이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장기간 분쟁 끝에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접은 사례도 있다.

대상도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롯데시네마, 롯데건설, 롯데상사 등 대부분의 계열사에 걸쳐 있다. 추혜선 의원은 “롯데의 불공정행위는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며 “대기업의 갑질 유형이 총망라된 ‘갑질 종합 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 / 김지야
그래픽 / 김지야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이 비단 롯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롯데가 유독 심하다는 평이 많다. 오죽하면 ‘롯데피해자연합회’까지 생겼겠는가. 롯데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지난해 10월 롯데피해자연합회를 만들었다. 롯데 본사 앞에서 피해 배상을 요구하며 각자 ‘1인 시위’를 하던 도중 서로 딱한 사정을 알게 돼 뭉쳤다고 한다. 김영미 회장은 “혼자 힘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여서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라며 “설령 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더이상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힘들지만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정 대기업을 상대로 별개의 피해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공동 대응하는 곳은 아마 롯데가 유일할 것이다.

피해자들은 롯데의 갑질이 일부 임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잘못된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실무진은 윗선에 상황을 허위로 보고하고 임원진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책임을 피하려고 묵인한다는 것이다. 또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소송을 내면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무력화한다고 한다.

롯데의 ‘이중적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추혜선 의원은 “롯데가 신동빈 회장이 재판을 받는 동안에는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태도가 돌변했다”며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협박을 한 일도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오래전에 일어난 일도 있고 서로 생각이 다른 경우도 있어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신동빈 회장이 상생경영을 강조하는 마당에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을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게 ‘경제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라며 “다만 공정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범정부 차원’에서 을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갑질 근절은 공정위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지방자치단체 등이 함께 나서야 한다.

이달 초 신동빈 회장이 석방되고 보름여가 지난 23일 롯데는 앞으로 5년간 신규 투자 50조원과 일자리 7만개 창출 계획을 발표했다. 신 회장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할 일이 있다. 신 회장이 직접 협력업체들의 호소를 듣고 공정한 조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바로잡기 바란다. 그리고 더는 롯데에서 갑질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으면 한다. 외부의 힘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바꾸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하다. 지금 우리 경제에 협력업체와의 상생협력만큼 절실한 일은 없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김상조 위원장 “범정부 차원에서 ‘갑질 근절’ 위해 노력할 것”

▶ 관련 기사 : 신동빈 회장 경영 복귀…“5년 동안 50조 투자·7만명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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