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팀장 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던 날, 좀 허무했다. 2001년 2월 <한겨레21>에 ‘차마 총을 들 수가 없어요’라는 기사를 썼다. 그로부터 18년째 헌재는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고, 대법원은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기자의 취재는 2000년대에 집중돼 있었는데, 2004년 대법원은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결했고 헌재도 병역법 처벌조항을 합헌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에 달린 걸 모르지 않았지만,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몇명의 결정에 수천, 수만명의 운명 한켠이 좌우되는 ‘시스템’이 허무했다. 운이 좋았다. 2001년 초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취재를 하다가 평화인권연대 최정민 활동가를 만났다. 그에게 병역거부 이야기를 들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만났고 그렇게 작성된 기사는 ‘생물’이 되었다. 불교와 평화적 신념에 근거한 병역거부자 오태양씨가 나타났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병역거부 역사, 독재정권 시절 심지어 목숨을 잃은 이들까지 이야기는 절절했다. 지난 18년은 사람의 얼굴로 남았다. 처음 취재를 간 집은 당시 살던 동네에서 가까웠다. 형제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이야기를 하던 순간에 깃들었던 미묘한 불안과 슬픔, 차가운 공기 속에 마주한 오태양씨의 침묵과 떨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수감된 남편을 면회하던 부인의 처연함…. 언젠가 망명 신청을 하려고 노르웨이에 갔다 그저 막막해 돌아온 병역거부자 이야기는 너무 쓸쓸했다. 그렇게 기자가 아니면 들어보지 못했을 절절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마주한 ‘사람책’을 통해 손에 잡히지 않는 ‘양심’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엉겁결에 이해의 영역 밖으로 추방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위치에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 경험하지 못한 환대가 돌아왔다. 이해받지 못하던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자 서로에게 다른 세계가 열렸다. 사실상 반세기 넘게 섬이었던 한반도에서 타자를 경험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언젠가 서울 거리를 걷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키도 비슷하네.’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일은 다른 존재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할 터인데, 다들 말도 생김새도 비슷한 나라에서 그런 차이를 경험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만큼 서로를 ‘다른 시민’으로 만나는 경험,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적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8년, 상상해본 적 없는 누군가의 양심을 조금 앞서 이해하는 기회를 누렸다. 지난 10월 대법원이 병역거부자의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국방부 대체복무제안은 현역의 2배가 넘는 기간, 국방부 산하의 심사기구, 교정시설로 한정된 근무지 등 시민사회가 우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를 넓혀온 사회의 변화가 충분히 담기지 않은 것이다. 이미 18년 전 기사에도 1.5배 이상의 복무 기간은 징벌적이라고 썼다. 한국 사회가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을 두 팔 벌려 환대할 기회를 잃지 말았으면 한다. 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다른 시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드문 기회를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같은 이들의 특권으로 남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환대함으로써 환대받는 경험이 보통 시민의 역사로 남는다면 20년 가까운 논란은 의미를 얻을 것이다. 다행히 대체복무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무언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해하려고 하는 당신의 환대가 그 내용을 바꿀 수 있다.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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