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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컨베이어벨트

등록 2018-12-19 17:54수정 2018-12-20 09:36

전우용
역사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간을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a tool-making animal)로 정의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인간 말고도 여럿 있지만,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동력의 방향을 바꿔 작동시키는 도구를 따로 기계(machine)로 분류하는데, 본디 한자 기(機)는 베틀, 계(械)는 형틀이라는 뜻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간은 자신이나 가축의 힘으로 조작할 수 있는 크기 이상의 기계를 거의 만들지 않았다. 마력 단위를 넘는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물레방아나 풍차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옛날에도 축력을 이용해 기계를 조작하던 사람이 소뿔에 받히거나 말발굽에 채어 죽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 가능성은 벼락 맞는 것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뒤, 인간이나 동물의 힘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기계들이 속출했다. 개별 인간이 맞설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들은, 이윽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인간을 자기한테 종속시켰다.

1913년, 포드자동차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미국 미시간주에 설립한 공장에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했다. 이 컨베이어벨트 옆에 늘어선 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단순작업만 반복해서 수행하면, 그 끝에서 완성된 자동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컨베이어벨트의 이동 속도가 곧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였다. 속도를 강도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컨베이어벨트와 노동자들은 함께 거대한 기계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부품으로 삼는 포디즘(Fordism)이라는 기계.

1936년, 전설적인 배우 겸 감독 찰리 채플린은 인간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시대를 풍자한 영화 <모던타임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묘사한 현실은 그보다 조금 앞서 등장한 ‘인간을 부품으로 삼는 거대한 기계국가’, 즉 파시즘 국가의 현실보다 훨씬 덜 끔찍했다.

포디즘의 시대가 끝나고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떠돈 지 반세기가량 되었으나, 컨베이어벨트는 아직도 곳곳에서 인간을 조수로 삼아 작동하고 있다. 며칠 전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현대는 호환 마마보다 기계가 무서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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