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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지갑

등록 2018-12-26 18:45수정 2018-12-27 09:25

전우용
역사학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발행, 유통된 화폐는 상평통보다. 1633년 처음 주조했을 때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곧 발행을 중단했으나, 1678년 재차 주조한 뒤로는 1894년 ‘신식화폐발행장정’ 제정 때까지 200여년간 계속 발행했다. 상평통보는 1905년 일제의 화폐개혁으로 유통계에서 공식 퇴장했지만 민간에서는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상평통보가 유통된 이후 한동안 사대부는 이를 천하게 여겼다. 한때 돈을 속된 말로 ‘쇳가루’라고들 불렀는데, 이는 전(錢)이라는 글자에 정확히 부합한다. 전(錢)은 부스러져서 가치가 없는 조개껍데기인 ‘천할 천’(賤)과 뜻이 통하는 글자였다. 오른손과 왼손을 차별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는데, 우리는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도 한다. 올바른 일을 하는 손이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라이트 핸드(right hand), 완전히 같은 뜻이다. 나머지 온갖 일을 떠맡은 손이 영어로 레프트 핸드(left hand), 우리말로 왼손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돈을 만질 일이 있을 때 왼손을 이용했다. 그래서 돈은 오른쪽 소맷자락에 넣고 다녔다. 번잡한 시장에서 두리번거리는 시골 양반의 오른쪽 소매가 불룩하면, 틀림없이 돈을 가진 것이다. 무뢰배 한명이 그에게 접근하여 오른쪽 소매를 치면 그의 오른쪽 소매 안에 들었던 돈이 땅에 떨어진다. 다른 무뢰배가 그 돈을 냉큼 집어서는 도망친다. 소매치기라는 말이 생긴 연유다. 요즘에도 이런 범죄를 소매치기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남의 소매를 쳐봐야 아무것도 안 나온다. 요즘 소매치기는 옷이나 가방 안의 지갑을 훔친다.

지갑(紙匣)은 종이로 만든 작은 상자라는 뜻이다.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지갑은 수갑(手匣)이라고도 불렀다. 옛날 사람들은 도장이나 엽전 등의 귀중품을 작은 지갑에 넣어 들고 다니곤 했다. 한국인들이 현재와 같은 형태의 가죽 지갑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벽두부터였다. 처음에는 혁갑(革匣)이라고 불렀으나 용도가 같아 곧 지갑으로 통칭되었다.

현대인은 신분증, 신용카드, 지폐 등을 넣은 지갑을 늘 휴대하고 다닌다. 지갑은 현대인의 필수 휴대품이자 그의 정체성을 담은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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