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는 조선의 3대 정승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이지만 계급과 성별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자기모순을 깨닫지 못했다. 국가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저지른 행동이 죄가 아니도록 하는 것에 관심을 더 보인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조선 시대 세종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 ‘관기 제도’를 폐지하자는 안건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기생은 모두 관아에 소속되어 출퇴근을 하고 나이가 많아지면 은퇴를 하는 ‘관기’였고 전국의 모든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는 나라에서 기생을 직접 양성하고 관리한다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런데 관기 제도를 폐지하자는 세종의 주장을 반대한 것은 의외로 청렴하고 대쪽 같기로 유명했던 신하인 허조였다. 허조는 무릇 남녀 간의 일이란 사람의 큰 욕구라 금할 수가 없는데 만약 기생이 없어지면 지방의 젊은 관헌들이 여염집 여성들을 겁탈하는 일이 발생해 영웅 준걸들이 죄를 짓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기생 제도 폐지를 반대했다. 참 이상하다. 영웅 준걸이란 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구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우리는 자기 배가 고프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의 밥을 훔치거나, 주먹을 휘둘러 빼앗는 이를 두고 결코 영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을성이나 정의감도 없이 강간을 저지르는 이가 행여나 국가의 인재가 되지 못할까 봐 이렇게도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다니, 영웅 준걸의 덕목엔 여성의 삶에 대한 존중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남녀가 서로 끌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남자가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어기는 것이 아닌가. 남성들이 성구매를 할 수 없다고 해서 갑자기 성폭력을 저지르게 된다? 이 역시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반대로 성폭력을 저지를 뻔했는데 구매를 통해 참았다는 것 또한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구매를 허용하기에 성폭력도 늘어난다고 보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이 둘 사이에는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고, 여성을 성적 도구화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세종이 조선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인 장영실의 재능을 높이 사서 ‘상의원 별좌’라는 관직을 주려고 할 때였다. 이때도 허조는 완강히 반대를 했는데 천민인 기생의 자식에게는 관직을 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허조는 기생은 영웅 준걸들을 위해서 나라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하면서도 이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기생 제도는 찬성했지만 정작 기생과 자녀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기생이 딸을 낳으면 기생이 되고 아들을 낳으면 노비가 되는 구조였으니 기생과 노비의 자동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될 뿐이다. 허조의 주장은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지만 이런 논리가 먹히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에서 분명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한 사람의 삶, 그 한 사람의 생명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허조는 조선의 3대 정승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이지만 계급과 성별이라는 문제 앞에서는 자기모순을 깨닫지 못했다. 모순이란 이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저지른 행동이 죄가 아니도록 하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인다. 그가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이루어낸 성취이지만 그의 잘못, 특히 연애나 결혼, 성적 행동과 관련한 잘못은 그저 ‘남자’로서 실수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성적 차이를 강조하고, 그것을 자연과 본능의 원리로 설명하는 것은 생물학 영역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정치가, 법이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남자의 성욕은 본능적으로 강한데 그 강함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조그마한 유혹에도 매우 잘 넘어간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강한 것이 아니라 자제력이 약한 것이다. 한편 남성다움의 최고 덕목은 참을성, 인내심이라고도 한다. 이런 모순을 보지 못할 때 명백한 편파 수사, 편파 판결이 나온다. 전도유망한 미래가 있고,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도 많은 가해자가 선고유예, 집행유예, 감형 등 선처를 받는다. 피해자가 아니라 바로 국가의 선처를 받는다. 2018년 내내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의제는 데이트 폭력, 아내 학대, 불법 촬영물 유포, 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었다. 하지만 모순은 여전하고, 싸움은 2019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새해는 숫자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길, 그런 새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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