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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의미와 신뢰 / 김하수

등록 2019-01-06 18:41수정 2019-01-06 19:10

얼핏 보면 사람은 모두 돈이나 권력만을 믿고 사는 것 같으나 사실 마음속 깊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좀 더 지고지선한 그 무엇, 그 이상의 무언가를 뜻하는 단어를 품고 의지하려 한다.

옛날부터 ‘하늘의 뜻’이라거나 ‘충’과 ‘효’ 같은 말로 깊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대명천지에서는 그러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와 소망이 존중을 받는다는 이 시대에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믿음과 의지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아닐까 한다. 이 단어들은 특이하게도 여느 단어처럼 형태와 의미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반드시 ‘신뢰’가 있어야 쓸 수 있는 말이다.

아무리 신앙이나 평화주의를 부르짖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온갖 불이익을 불사하고 내세우는 그들의 ‘신념’이 겨우 병역기피자의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들이 말하는 ‘양심’이란 말에 비위 상해, 군대 간 사람이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하는 반문은 사리에 맞지도 않는다. 진짜 비양심적인 사람은 허위진단서를 내서 ‘공식적으로’ 병역을 기피하고도 감옥에 안 간 사람들이다. 많은 손실을 감수하고 내세우는 ‘양심’과 ‘신념’을 일단 경청할 필요는 있다.

그들에게 교도소에서 더 오래 근무하라는 둥, 양심이니 신념이니 하는 말을 빼라는 둥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익이나 욕망 외에는 아무런 ‘가치’나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슬픈 증거일 뿐이다. 차라리 그들이 주장하는 양심과 신념을 이 사회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을 만들어줄 여지는 없을까? 이 두 단어는 소시민들 마음에 남아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신뢰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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