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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조지 오웰의 믿음 / 은유

등록 2019-01-11 18:10수정 2019-01-11 22:40

은유
작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력한 첫인상은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소음에서 비롯된다. 갱도 안에서는 멀리까지 볼 수가 없다. 램프 불빛은 뿌연 탄진에 막혀 얼마 뻗지 못한다.”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다. 1936년 영국 북부지역 탄광노동자의 실상을 기록한 오웰은 그곳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보던 지옥 같았다”고 말한다.

오웰이 묘사한 지옥을 얼마 전 나도 보았다. 석탄 먼지 어둑한 공간을 밝히는 희미한 손전등. 굉음을 내며 굴러가는 컨베이어벨트. 그 아래 수십개 구멍에 몸을 반으로 접어 머리를 넣어 살피고 바닥에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치우는 사람. 2㎞ 넘는 동선을 오가며 일명 ‘낙탄 작업’을 나 홀로 처리하던 스물넷 청년은 기계에 빨려들어가 몸이 분리된 채 숨을 거둔다.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사고 당일 폐회로텔레비전(CCTV) 장면이다.

오웰은 같은 책에서, 해마다 광부 900명당 하나꼴로 사람이 죽어갔다며 오랫동안 광부생활을 한 이라면 누구나 자기 동료가 목숨을 잃는 광경을 보게 된다고 보고한다. 김용균씨가 일하던 작업장도 다르지 않다. 태안화력이 속한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7년간 산업재해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이 통계가 섬뜩한 것은 죽음의 누적이 아닌 죽음의 허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평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떨어진 석탄을 손으로 줍지 않도록 개선해달라, 어두워서 위험하니 조명을 밝게 해달라, 요구했으나 번번이 묵살됐다고 한다. 이 의도적 외면은 죽어도 되는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이 갈리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왜 그들에겐 대낮처럼 자명한 ‘위험’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간 사망사고를 보고받았을 안전담당 책임자, 원·하청 관리자가 눈감고 지나친 그 현장을 최초로 ‘본’ 사람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다. ‘내가 이런 데 아이를 보냈구나’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아들이 일했던 현장을 직접 가보니 전쟁을 치르는 아수라장 같았다.” “아직도 우리 용균이보다 험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들이 많이 있다.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초조하게 호소한다.

탄광지대 체험 후 조지 오웰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품위는 모두 그들과 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혹독한 노동현장과 일상적 가난에 빚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노라.” 아울러 그는 보통사람이 지닌 근원적 품위와 잠재력을 누구보다 신뢰했다. 보통사람들이 눈을 떠서 대세에 저항하기만 하면 역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 김미숙씨를 보면서 오웰이 말한 ‘눈뜬 자’의 힘을 느낀다. 김용균법으로 일컫는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지만, 어머니는 누워 있지 않고 광장이나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고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도 다른 죽음을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이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 게 나라 구하는 일이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어머니 김미숙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자식은 햇빛이다. 그 빛을 이렇게 허무하게 잃고 나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단지 이 느낌을 다른 부모가 겪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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