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우리가 살아가면서 친구, 벗, 동무들을 중요하게 여기듯이 국가도 가까운 나라가 있고 먼 나라가 있으며, 그저 무심히 지내는 나라가 있는 것 같다. 가깝게 느끼는 나라를 ‘우방’이라고 일컫는 것 같은데, 우리 경우는 워낙에 고된 냉전을 겪어서 그런지 우방이라 하면 군사적 동맹국을 떠올리게 된다. 오래된 벗에게는 서로를 맺어주는 공감대가 있고 또 공감대를 오래 유지시켜주는 ‘정서적 매개물’이 있다. 공통된 경험이라든지 취향이라든지 하는 것 말이다. 이와 달리 동업자나 동료라고 하면 함께 일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관계다. 동맹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친구보다도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가깝지만 이해관계가 엷어지면 남남이 되기도 하고 가차없이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국가 간에도 이런 동맹이나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다. 최근 일본과 갈등이 벌어지면서 한-일 관계를 우호국, 우방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한 세기 남짓 동안의 여러 사정이 그런 단어 사용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적 관계를 냉정히 표현한다면 미국을 매개로 한 ‘안보협력국’ 정도가 아닌가 한다. 벗과 같은 우방이라면서 이런 식으로 툭 건드려놓고 신경전만 벌이고, 또 그러다가 시치미 떼고 안보 전략과 정보는 공유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문제에서 진정한 ‘벗’은 있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가 자체가 이익 추구의 산물이었던 만큼 국가에는 벗으로서의 우방이 아닌 잠정적으로 이익을 공유하는 동맹국만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그 동맹도 일정한 기간만 유효한 것이 정상일 것이다. 국제관계를 냉엄하게 돌아보는 정상적인 시각을 위해서라도 우방이라는 말을 너무 속 편하게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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